사진 속 여성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외동딸인 '첼시 클린턴'입니다. 올해 나이 31살. 어머니는 모두들 아시는 바처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입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에 현직 국무장관인 어머니라! 어마어마한 부모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다고 봐야할까요. 지난해 8월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투자은행가로 알려진 마크 메즈빈스키와 결혼식을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첼시 클린턴의 학벌과 경력도 화려합니다. 명문 스탠퍼드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공서비스 분야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 미디어그룹 인터랙티브코프(IAC)의 최연소 이사로 활동하면서, 클린턴 재단과 비영리단체 커먼센스미디어, 웨일코넬 메디컬 대학에서도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첼시와 관련해, 우리 시간으로 14일 오후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첼시가 미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하나인 NBC 방송의 기자로 전격 발탁됐다는 소식입니다.
첼시가 NBC 저녁 뉴스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인 '변화를 가져오다(Making a Difference)'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자로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Making a Difference'라는 프로그램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인데, NBC 방송측은 "그동안 첼시가 공공서비스 분야 등에 보여온 헌신적인 활동 경력을 감안해볼 때 충분히 자격을 갖췄다"면서 발탁 이유를 밝혔습니다.
특히 NBC는 첼시를 기자로 영입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케이퍼스 NBC사장은 "지난 2008년 첼시의 어머니인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첼시가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올해 7월 첼시를 만나 긴 대화를 나눈 끝에 리포터를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첼시도 성명을 통해 "방송 기자 활동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것들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 인생이란 살면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생긴 일을 통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Life is not about what happens to you, but about what you do with what happens to you")는 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하며 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첼시는 NBC에서 받을 급여 전부를 지난 1일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이름으로 클린턴 재단 등에 기부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첼시가 NBC 방송 기자로 입사한 것을 '어떻게 봐야하느냐'입니다. 미국에서 3대 지상파 방송사인 ABC와 CBS, NBC의 방송기자가 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해마다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 기자들의 경우 대부분 소규모 지역 로컬 방송사 기자로 시작해 바닥부터 '빡빡' 기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뒤, 좀 더 규모가 큰 지역 방송사로 옮겨다니게 됩니다. 이렇게 몇차례 경력을 쌓은 뒤에야,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에이스'라 할 수 있는 기자들이 3대 지상파 방송사 기자로 스카웃 되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3대 지상파 방송사 기자가 되면 대우도 어마어마하게 달라집니다. 지역 방송사 기자들의 연봉이 보통 4-5만 달러에서 많아야 10-20만 달러 사이인 반면, 3대 방송사 기자가 되면 최소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의 연봉이 보장됩니다. 여기에 유명 앵커의 경우엔 1천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게 됩니다. 첼시가 NBC와 계약한 연봉이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최소 수십만 달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바늘구멍 같은 힘든 과정을 거쳐 선발된 다른 지상파 방송사 기자들과 달리, 기자로 활동한 경력도 없고,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지도 않은 첼시는 공공서비스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NBC 방송사의 기자가 된 것입니다. 더우기 방송사가 영입에 공을 들였다고 하니, 별다른 개인적 노력없이 기자가 됐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NBC 방송이 첼시를 기자로 발탁한 것과 관련해, 미국 언론 보도들을 찾아보니 아직까지는 그다지 비판적인 기사들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USA TODAY가 조금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습니다. USA TODAY는 '앤드류 타이달(Andrew Tydall)'이라는 방송뉴스 분석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언론사는 저널리스트를 고용해야 한다. 기자 경력이 없는 사람을 고용한 것은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요, 게다가 가족의 배경을 이용해 사람을 고용한 것은 더욱 좋지 않은 일이다."
NBC 방송이 전직 대통령의 딸을 기자로 고용한 것은 첼시가 처음이 아닙니다. NBC는 2009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딸 제나 헤이거를 아침 뉴스쇼인 '투데이'의 기자로 기용한 바 있습니다.
위 사진은 NBC 아침 뉴스쇼에서 활동중인 부시 전 대통령의 딸 제나의 모습입니다. 왼쪽 남성은 뉴스쇼의 남자 앵커입니다. 또 대통령의 딸은 아니지만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딸 메간 매케인도 NBC에서 방송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메간의 모습입니다.
NBC가 전직 대통령의 딸들과 대통령 후보의 딸을 기자나 비평가로 고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서 시청률을 높여보려는 의도인지, 딸들을 통해 방송사의 정치적 성향을 자연스레 시청자들에게 알리려는 의도인지, 또다른 의도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딸인 제나와 매케인 상원의원의 딸 메간이 어떤 절차를 거쳐서 NBC에 고용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 첼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특례 채용'일 가능성이 큰 것이고, 전직 대통령 딸들의 자격과 능력을 떠나 어마어마한 논란을 낳았을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지난해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 파문을 떠올려보시면 쉽게 추론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직 이 문제가 생각보다 큰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과는 다른 상류층 인사들에 대한 미국민들의 관대함 때문일까요? 위에서 언급한 USA TODAY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전 CNN 회장인 '조나단 클라인'은 첼시를 옹호하며 주장한 내용입니다. "언론인에 대한 자격조건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이 보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기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첼시가 일반 기자들과 다른 시각을 갖고 보도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클라인 전 CNN 회장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언뜻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누구나 방송기자를 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인데, 아무나 하지 못하는 직업이 방송기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나라와 미국의 방송환경, 또 방송기자의 업무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첼시와 관련해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흥미로운 기사도 있더군요. 첼시의 시어머니가 필라델피아 지역방송과 NBC방송에서 24년간 기자로 일한 커리어우먼이었다는 것입니다. 첼시가 NBC 방송 기자가 되는데 시어머니가 어떤 역할을 했을지도 궁금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첼시가 NBC 방송 기자로 어떻게 활동해나갈지, 미국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미국인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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