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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전삼각대, 설치하려다 생명 위태

[취재파일] 안전삼각대, 설치하려다 생명 위태

이병희 기자 able@sbs.co.kr

작성 2011.11.15 15:40 수정 2011.11.15 17: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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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가운데 '2차 사고'라는 것이 있습니다. 차량이 고장 혹은 사고로 멈춰서 있을 때 이 차량을 또 다른 차량이 충돌해 발생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지난달 3일 저녁 7시쯤, 서울 강변북로에서 차량 1대가 고장으로 멈춰 섰습니다. 고장 차량 운전자는 도로에 나와 다른 차량이 피해가도록 수신호를 하다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차량에 치어 숨졌습니다. 지난 9월에도 같은 강변북로에서 고장 차량 운전자가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손으로 수신호를 하다가 택시에 치어 숨지는 2차 사고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사고가 생명까지 잃게 만드는 참사로 이어진 것이어서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3년간 고속도로에서만 모두 255건의 2차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14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사망률로 따지면 58%입니다. 같은 기간 전체 고속도로 사고 사망률이 15% 정도니까 2차 사고의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2차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가 있습니다. 사고 차량 후방에 안전 삼각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겁니다. 1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뒤따르는 운전자에게 빨리 알려서 추가적인 피해를 막자는 취지죠. 도로교통법을 보면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해당 차량 운전자는 주간에는 차량 후방 100m, 야간에는 후방 200m에 규격에 맞는 안전 삼각대를 세우도록 돼 있습니다. 법규에 보면 차량에 안전 삼각대를 비치하지 않으면 범칙금 2만 원, 사고 시 규정에 맞게 설치하지 않으면 범칙금 4만 원을 내야 합니다. 또 안전삼각대를 설치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경우에는 보험 처리 시 본인 과실이 최대 30%가 잡힐 정도로 엄격한 규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또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규정일까요? 현실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우선 차량에서 100m 거리를 잰 뒤 한 여성 운전자에게 트렁크에 있는 안전 삼각대를 꺼내서 후방 100미터에 설치해 보도록 했습니다.

평소 특별한 관심이 기울이지 않았던 운전자라면 본인의 차량 트렁크에 안전 삼각대가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여성 운전자 역시 생전 처음 안전 삼각대를 꺼내봤고, 당연히 조립하는 데에도 굉장히 서툴렀습니다. 어렵게 조립한 안전 삼각대를 들고 차량 후방 100m로 뛰어오는데 1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100m를 어렵게 뛰어온 여성 운전자는 “생각보다 너무 멀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차량이 없는 도로에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차량이 고속으로 씽씽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에서는 어떨까요? 설령 어렵사리 안전 삼각대를 설치했다 하더라도 도로에 낮게 설치된 안전 삼각대는 뒤따르는 운전자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일부 교통 전문가들은 현행 안전 삼각대 설치 규정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통 상황과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 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70년입니다. 차량 대수와 도로상황, 운전자 특성이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법인데, 4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아무런 변화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인명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안전삼각대를 소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에 비해 설치 거리 규정이 짧습니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첫 번째 삼각대는 3미터, 두 번째 삼각대는 30미터에 설치하도록 돼 있고, 영국은 45m 이상, 호주는 50m 이상입니다. 또 미국과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삼각대를 설치하는 대신 불이 켜지는 경광등이나 불꽃 섬광탄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적용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차량 트렁크를 열어 두기만 하면 높은 곳에 삼각대가 설치된 효과를 나타내는 새로운 개념의 삼각대도 이미 출시돼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안전조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운전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 없는 안전 삼각대 규정은 이제 새로운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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