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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슈퍼마리오와 파파데모스

[취재파일] 슈퍼마리오와 파파데모스
11월 전반부 내내 국제금융시장을 혼란스럽게 했던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지도부가 교체됐습니다. 두 나라 모두 총리가 사임하고 경제관료에게 위기극복의 키를 맡긴 것입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용적으로도 새로 선임된 두 나라의 총리는 거의 쌍둥이와 다름없습니다. 우선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전문가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루카스 파파데모스 그리스 신임 총리는 미국 MIT에서 물리학(학사)과 전기공학(석사)을 전공한 이공계지만,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내정자는 밀라노의 명문 보코니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에게 배웠습니다.

주요 경력도 그렇습니다. 파파데모스는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그리스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하면서 2002년 1월 그리스를 유로존에 가입하도록 한 장본인입니다. 변방의 국가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단일 통화가 효율적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2002년부터 유럽 중앙은행(ECB)으로 옮겨 지난해까지 부총재로 근무하면서 유로존의 신봉자와 수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몬티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EU집행위원을 하며 유로존 출범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1999년 경쟁담당 집행위원을 맡으면서는 미국의 거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와 제네널일렉트릭을 상대로 반독점소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유로존의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프러시아계 이탈리아인’이라는 별명까지 붙게 됐습니다. 그 때의 이미지와 지금 이탈리아가 처한 상황, 그리고 그의 이름이 ‘마리오’라는 것이 겹쳐지면서 이탈리아 언론들은 그를 ‘슈퍼마리오’라고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쌍둥이 같은 이들 둘이 앞으로 해야 하는 일 역시 똑같습니다.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긴축정책을 강력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 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2차 구제금융안을 이행하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와 임금, 연금 삭감이라는 칼을 꺼내 들어야 하고, 이탈리아도 연금수령 연령을 상향하고 노동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서민들에 적대적인 정책을 집행해야 합니다.

과연 그리스와 이탈리아 국민들이 이들 새로운 사령탑에 호응하며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오히려 부정적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지난달 20일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마련한 긴축안의 의회표결 당시 20만 명의 시민들이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탈리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15일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반 월가 시위가 벌어졌을 때, 로마에서는 단일도시 최고 규모인 20만 명이 모였습니다. 일부 시위대가 국방부 청사와 도심의 상가, 차량 등에 방화를 하며, 최악의 폭력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던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시민들이 총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긴축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렇게 정책집행 과정에서의 한계도 비슷하겠지만, 각각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공통의 현실적인 한계 역시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현실적인 한계에는 골드만 삭스라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유로존은 1999년 11개 회원국으로 출범했습니다.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추가된 나라가 2002년 그리스였습니다. 유로존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2년 동안 자국 화폐와 유로화와의 환율 메커니즘을 보고하고,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는 당연히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고(당시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이른바 PIGS 국가들 모두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편법을 동원해 수치를 맞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당시 중앙은행 총재였던 파파데모스 총리와 주간사였던 골드만 삭스였습니다. 최근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국민투표 실시 제안으로 파문을 일으켰을 때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자격도 안 되는 그리스가 수치를 조작해서 유로존에 들어왔다고 비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파파데모스와 골드만 삭스의 사기였다는 것이었죠.

1999년 유로화 출범 멤버였던 이탈리아 역시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수치 조작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골드만 삭스가 역할을 했을 것이고요. 마리오 몬티 총리 지명자는 2004년 유럽연합 집행위원을 마친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골드만 삭스의 국제고문을 지냈습니다. 채권발행 시장규모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인 이탈리아는 골드만 삭스의 유럽 전진기지나 다름 없습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된 드라기 역시 골드만 삭스 출신이었죠.

결국 유로존 출범 과정이나 그리스의 유로존 편입 과정이 유로존 재정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고, 지금 두 나라의 새로운 지도부와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나라의 새로운 지도부에 위기 해결 능력이 없다는 얘기는 분명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이미지로 비쳐지는 지금의 두 지도자가, 얼마나 확실하게 과거와 단절하고 국민 곁에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서민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설득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온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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