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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제 미국에선 선거가 있었다

주민자치의 힘, 그리고 공화당의 패배

[취재파일] 어제 미국에선 선거가 있었다
어제(11월 8일) 미국은 평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선거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는 4월, 지방선거는 6월, 대선은 12월 이렇게 실시되는데, 미국은 주로 11월에 선거가 있습니다. 사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면 어제 선거 같은 경우는 거의 못 느끼고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방송과 신문이 별로 보도를 안 하는 데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질 사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더우기 어제같은 경우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흑인 CEO출신 허먼 케인 후보가 자신에게 쏟아진 성추문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에 모든 언론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린 탓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결과가 모두 나오고 나니까 제 눈길은 저절로 그 쪽으로 가더군요. 일부 주지사나 지방의원을 바꾸는 선거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주민투표때문이었습니다. 대선이나 총선거와 같이 실시되는 선거가 아닌 때에 미국의 각 주는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사안들을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거죠. 그리고 어제 몇몇 주에서 실시된 주민투표는 주제도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미시시피주입니다. 미시시피주 헌법에 규정된 사람의 개념을 확대,수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졌습니다. 난자에 정자가 수정된 시점부터 사람으로 보고 인격권을 주도록 하자는 내용인데요, 결과는 부결이었습니다. 이 안건이 조용히, 그러면서도 많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낙태 반대론자들이 이 투표 결과를 전미국적인 낙태 반대운동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개념이 수정 때부터라고 한다면 그 이후에 그 생명을 지우는 행위는 모두 살인죄에 해당됩니다.따라서 낙태는 원천적으로 불법이 되는 거죠. 민주당과 낙태론자들은 당연히 이 투표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폭행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낙태를 범죄로 간주해 못하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나섰습니다.

미국은 1973년 연방 대법원의 로우 대 웨이드 판결 이후에 미국 여성들은 임신 6개월 이전에는 선택에 따라 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미시시피주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낙태 반대 단체들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사우스 다코타주에서도 같은 내용의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내년 대선의 쟁점으로 낙태문제가 부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미시시피주 주민투표에서 개정안이 부결되면서 일단 제동이 걸렸습니다. 앞서서 콜로라도주에서도 같은 내용의 주민투표가 두 차례나 실시됐는데 모두 부결됐습니다. 어제 함께 실시된 투표에서 미시시피 주지사로 뽑힌 공화당의 브라이언트 주지사는 선거과정에서 "만약에 사람의 개념을 확대하는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그래서 낙태를 막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사탄의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부결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다음은 조지아주의 얘기입니다. 재미있는 주민투표였습니다. 일요일에도 술을 팔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의 안건을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127개 시군 가운데 110곳에서 통과됐습니다. 안건을 통과시킨 시군에서는 앞으로 일요일에도 편의점이나 주류판매점에서 맥주 6개들이 한 상자와 위스키 한 병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류판매점 주인들의 반응입니다.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봤자, 별로 수익날 게 없기 때문에 자신들은 반대한다고 나섰습니다. 여기에 기독교 단체들이 "일요일을 토요일과 똑같은 날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면서 반대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애틀랜타같은 경우에는 투표에 참여한 주민중 80%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보수적인 남부를 대표하는 조지아주에서의 이번 투표 결과는 자신을 점잖은 백인 보수층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 됐다고 하네요.

오하이오주에서는 공공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주민투표가 있었습니다. 강경 보수로 불리는 티파티 세력이 주도한 법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하이오 주민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시켰습니다. 오하이오 주지사는 "주민들의 의사는 명백해졌다. 도대체 오하이오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면서 이 법안이 투표 대상이 된 것 자체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애리조나주에서는 처음으로 주 상원의장을 소환하는 투표가 실시됐는데요, 러셀 펄스라는 이 의원은 미국 전역에 논란을 불러 일으킨 초강력 이민법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불법체류자로 보여질 경우 아무나 세워놓고 불심검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었죠. 펄스 의원은 사력을 다해 소환에 반대하는 표를 늘리려고 애썼지만, 45%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습니다. 후임 역시 공화당의원이지만, 이 사람은 광범위한 공권력 행사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화당이 통과되라고 운동했던 투표는 부결됐고(미시시피, 오하이오), 공화당이 반대했던 투표는 통과된 것이죠. 결국 공화당의 패배라고 할 만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선거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가 40% 전후에서 고착된 호기를 맞고도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좀처럼 앞서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말해준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바로 공화당내 극우 진영이 주도하는 정책에 대해서 미국인들이 반감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오바마의 지지도와 상관없이 내년 대선과 총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은 미국 전역에서 강력한 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조 바이든 부통령은 어제 신이 났습니다.  오하이오주의 공공노조 단체교섭권 제한 안건이 62%대 38%의 압도적 차이로 부결되자 "오하이오 주민들이 중산층을 위한 위대한 승리를 일궈냈다. 교사와 소방관 노조등과 함께 오하이오주 주민들은 전 미국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중산층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짓밟히지 않을 것이라고."

큰 선거가 없는 올해 2011년 미국의 민심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나 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젯밤 백악관에서 흐뭇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네요.

* 미국에서도 주민투표의 경우 33.3%의 투표율이 안 되면 투표함을 아예 열지 못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이 곳 저 곳에 알아봤지만 속시원하게 대답해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다만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의 기고문등을 감안해 볼 때 미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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