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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영주가 들려주는 북국의 정열

내한 연주회 나서는 사라 장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사라 장)의 집은 미국 필라델피아입니다. 뉴욕에서 차로 2시간 반쯤 남쪽으로 갑니다. 오늘(8일)과 내일,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회를 갖는 그녀를, 지난달 하순 필라델피아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오늘은 그때 나눈 얘기들을 들려드립니다.

장씨가 이번에 연주하는 곡은 핀란드의 국민작곡가로 꼽히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시벨리우스는 낭만적이면서도 격정적인 관현악곡 '핀란디아'로 제일 잘 알려져 있지만, 이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에 못지 않은 명곡입니다. 장영주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해서, 그 곡 이야기로 인터뷰를 풀어나갔습니다.

기자: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자주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연주회를 하면 당사자가 여럿인데, 연주곡은 어떻게 정하나요?
장영주:  네 당사자가 다 동의해야죠. 독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저, 현지 기획사가 다 합의해야 정해져요. (이번 연주회에는 러시아의 대표적 악단인 상뜨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이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지휘로 참여합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저희 공연.문화 전문기자인 김수현 기자의 글이 여러 편 있습니다.)

기자: 혹시 이 곡이 지겨울 때는 없나요? ^^
장: 이 곡, 오래 했죠. 8살 때부터 했으니까요. (*참고로, 장영주씨는 이제 만 서른하나를 바라봅니다.) 옛날부터 너무나 사랑하던 곡이예요. 레코딩은 17살 되어서야 했지만요. 어떤 곡은 몇백 번씩 하다보면 지쳐서 '아, 이 곡은 좀 쉬어야겠다' 싶을 때도 있는데,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기자: 8살 때부터 이 곡을 했다구요? 대단한 난곡인데요?
장: (제가 너무 깜짝 놀라니까, 웃으면서) 돼요. 4분의 1 사이즈 바이올린으로요. 애가 작고 악기가 작으니까, 오케스트라도 줄여서 하죠.

기자: 아니, 기술적으로야 그렇다고 하지만, 그 곡에 담긴 정서 같은 것은 8살 어린이가 표현하기 힘들텐데?
장: 어렸을 땐 이 곡이 굉장히 테크니컬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도 많고, 실내악적인 요소도 많아요. 열 몇살 때던가, 핀란드에 가서 시벨리우스가 살던 집에도 찾아갔어요. 그가 작곡하던 책상에도 앉아보고, 그가 치던 피아노도 앉아서 쳐 봤어요. 쳐 보게 놔 두더라고요.

기자: 그렇게 해 보고 나면, 아무래도 그의 곡을 연주할 때, 느낌이 다르겠네요.
장: 좀 다르죠. 그게 1월이었는데.. 1월이면 무지하게 추워요. 해가 굉장히 짧고요. 무지 아름답긴 한데요..무섭게 추워요. 밖에 나가면 막 아파요. 너무 추워서. 하하..


장영주의 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 표지 (1998,EMI)


기자: 장영주 씨 인터뷰를 하러 오기 전에, 시벨리우스 협주곡 영주씨가 녹음한 음반을 들어 봐야 되겠더라고요. 1998년에 마리스 얀손스-베를린필과 함께 한 연주죠? 서울 집에는 CD가 있는데, 여기서 새로 구하려니 갑자기 마땅히 CD 사러갈 데도 없더군요. 요즘은 뉴욕 시내에 오프라인 CD가게를 보기 어려우니까...그래서 아마존에서 mp3 버전으로 다운받아 들어봤어요.  참 깊고, 아름답고, 변화무쌍하고 정열적이었는데... 장영주는 이 곡을 연주하면서 어떤 정경을 눈앞에 그렸을까가 궁금하더라고요. 이렇게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햇살 비치는 가을 숲일까, 아니면 짙고 푸른 하늘에 창백한 달이 걸린 겨울 밤일까...
장: 겨울이죠! 겨울! 너무나 춥고, 어둡고, 이모셔널(emotional)한 겨울이요. 그런데, 이 곡은 한 스타일로 쭈욱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스타일로 가요. 아주 차갑기도 하고, 아주 뜨겁게 정열적(passionate)이기도 하고, 아주 대조적인 요소가 많죠.

기자: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은 , 구소련의 전설인 므라빈스키의 레닌그라드 필의 후예 아닙니까? 같이 자주 연주해 보셨죠? 어떤 스타일인가요?
장: 아주 따뜻한 소리에, '불(Fire)이 많은' 오케트스라죠. '성격 있다'고 그러나요? 하하하. '성격이 아주 많고'요.. 안전하게 가는 오케스트라는 절대 아니예요.

기자: 그런 오케스트라와, 무대 매너부터 열정적인 장영주 씨가 만나서 들려줄 시벨리우스는?
장: 아주 "불(fire)이 많고", 그리고 아름다운 시벨리우스 연주가 될 거예요. 테크니컬한 것 뿐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젠틀하고, 얼마나 쿨한 면도 있는지.. 그리고, 팀워크가 얼마나 호흡이 잘 맞고, 무대위에서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들어봐 주세요.

기자: 그런데, 요즘 연주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부분에서 허리를 뒤로 젖히는 습관이 있지요? 혹시 일부러 그렇게..? ^^
장: 하하, 그건 아니구요. 원래는 발로 무대 바닥을 쿵! 찧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운드 엔지니어가 그거 듣기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리를 억제하니까 저절로 윗몸이 젖혀지네요. (웃음)

기자: 오늘 하루만 필라델피아 집에 있고, 다시 석달짜리 연주여행 가는 거라면서요? 한국도 그 길에 들르는 거구요?
장: 네. 그래서, 짐 싸는 게 보통 일이 아니예요.

기자: 연주복 드레스만 해도 부피가 엄청나겠네요?
장: 네, 그래서 제가 확 퍼진, 큰 드레스를 별로 안 입어요.^^ 내일은 뉴왁(맨하탄에서 허드슨 강건너, 공항이 있는 동네)에서 프라하로 떠나서, 불가리아, 런던, 홍콩 갔다가 한국으로 가요. 엄마가 한국으로 오실 때 가방을 하나 싸갖고 오실 거예요. 그 다음엔 남미 쪽으로 가는데, 그때는 미국 매니저가 또 다른 가방을 하나 갖고 올 거고요.

기자: 짐에는 옷 말고는 주로 뭐가 들어갑니까?
장: 저는 악보를 많이 갖고 다녀요. 독주 부분 뿐 아니라 스코어(오케스트라 전체 파트가 다 나오는 총보)를 늘 같이 보는데, 그게 엄청 무거워요.

이 외에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음악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대화도 나누었는데, 여기서는 이만 줄이기로 합니다. 오케스트라 총보는 정말 무겁습니다. 그걸 끌고 다니며 악보를 공부한다는 건 음악을 대하는 장영주의 자세가 얼마나 깊이있는가를 말해줍니다.

"그러면 지휘도 한 번..?" 하고 물어봤더니, 장영주 씨는, "지휘는 제가 못 할 껄 잘 알아요."하면서 웃었습니다. 바이올린이 다른 악기보다 레퍼토리가 워낙 많아서, 지금도 새로운 곡을 공부하고 있다면서,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힘들고 지칠 때까지 계속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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