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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은 지금 '레이건 앓이 중'!

[취재파일] 미국은 지금 '레이건 앓이 중'!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부터 흑인 최초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44대에 걸친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대통령직을 맡아주길 원하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요?  다름 아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입니다.

CBS뉴스의 '60분(60 Minutes)'과 베니티 페어지(誌)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로널드 레이건은 36%의 지지를 받아 29%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와  14%의 토마스 제퍼슨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때마침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내내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기념 사업이 펼쳐졌습니다.

지난 2월 6일, 미국 전역은 온통 레이건의 이름으로 뒤덮였습니다. 레이건의 100번째 생일날인 이날은 마침 미국 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날이어서 더욱 뜻 깊은 날이 됐습니다. 슈퍼볼이 열리는 텍사스주 알링턴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대형스크린을 통해 레이건 전 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방영됐습니다. 어느 평론가의 표현대로, 레이건 탄생 100주년과 슈퍼볼이 겹친 6일은 ‘기퍼 선데이’(Gipper sunday)로 불렸습니다.

대학 시절 풋볼 선수로 뛰었던 레이건은 1940년 실화에 바탕한 풋볼 영화 ‘누트 라크니’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레이건은 25살에 폐렴으로 숨진 비운의 풋볼 선수 ‘조지 기퍼’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그 이후 기퍼는 레이건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됐고, 레이건은 이 별칭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레이건은 1984년 대통령 재선 당시 "기퍼를 위해 한 번 더 승리하자"(Win one for the Gipper)고 호소했고 미 국민은 ‘기퍼’를 위해 기꺼이 표를 던졌습니다.

지난 1일에는 워싱턴 DC 인근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높이 2.74m, 무게 408㎏의 청동 동상도 세워졌습니다. 이 공항은 당초 워싱턴내셔널공항이었다가 지난 1998년 레이건공항으로 이름이 바꿨습니다. 90만 달러짜리 동상 제막식에는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밥 돌 전 미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돌 전 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레이건의 동상이 들어 선 곳은 미국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영국 런던의 주영미국대사관과 접해있는 그로스버너 광장에도 10피트 높이의 레이건 동상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재임 시절 단짝이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건강 문제로 참석은 못했지만 "레이건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냉전을 해소한 위대한 대통령이자 20세기 역사의 거인"이라고 치하했습니다.

6월 29일에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자유 광장에서도 레이건 전 대통령이 동구권 민주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동상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체코 정부도 수도 프라하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 앞 거리 이름을 ‘로널드 레이건 거리’로 명명하고 그의 공적을 기렸습니다.

 


이처럼 레이건이 퇴임 후 20여 년, 아니 별세 뒤에도 꾸준히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공한 헐리우드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81년부터 89년까지 대통령직을 연임했던 레이건은 냉전 종식과 함께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자리로 끌어 올린 리더십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통치기간 내내 강력한 반공 정책을 폈고 특히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면서 소련의 지배에 있던 동구권 국가들의 민주화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습니다. 온건파인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소련의 변화를 측면에서 유도하며 독일 통일을 굳건히 지지한 끝에 결국 동구권 붕괴와 냉전 종식을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세계인들은 자유의 세례를 만끽했습니다.

레이건은 공급주의 경제학의 신봉자였습니다. 집권기간 그의 경제 정책은 '레이건'과 '이코노믹스'를 합친 ‘레이거노믹스’로 불렸습니다.

레이거노믹스는 세출의 삭감과 소득세 감세,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 안정적인 금융정책으로 요약됩니다. 당시 미국 경제가 당면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치유하기 위해 종전 수요 관리만으로는 미흡하다는 판단 하에 공급을 자극해 파급 효과가 수요의 증대로 미치게 하는 것이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입니다.

퇴임 뒤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다 2004년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레이건은 특유의 낙관주의로 미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can-do spirit)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런 레이건이었기에 그의 영향력은 현재 미국 대선 후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존 헌츠먼 전 중국 주재 미국 대사 등 공화당 대권 주자들이 모두 레이건이 추구한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저마다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학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장에서 후보들이 고 레이건 대통령의 영상자료 앞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레이건 열풍'은 공화당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진보적인 민주당 출신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여름 휴가 기간 레이건의 전기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오바마는 아마도 ‘위대한 소통자’로 불렸던 레이건의 뛰어난 대 국민 소통 능력을 배우고 싶었을 겁니다. 실제로 오바마는 중간선거 패배 이후 기자회견에서 레이건을 거명하면서 "내가 국민들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었습니다.

레이건의 초당적인 국정운영을 롤 모델 삼아 재선 고지에 오르려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레이건도 오바마처럼 1982년 중간선거에서 졌지만 양당의 지지를 함께 받는 국정 어젠다를 적극 개발해 초당적 협력을 얻어내며 재선에 성공했고, 훗날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하나가 됐습니다.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또 잠재적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부상속에 레이건 시절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했던 미국의 전성기에 대한 그리움도 레이건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레이건에 대해 온통 찬양 일색 것은 아닙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흥청망청 써버렸던 외교적, 군사적 기회비용이 결국 지금의 미국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와 재정 위기의 씨앗이 되었고 뉴욕 월가 시위에서 보듯 미국을 병들게 한 극심한 양극화의 출발점이 됐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내외적인 환경과 운이 좋았을 뿐 국정 현안에는 무지한 대통령이었다는 박한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였나요? 지난 주말 로스앤젤레스 뉴포트비치 인근 공원에 세워진 레이건 동상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 5시반 검은색 옷을 입은 괴한이 동상 좌대와 픽업트럭을 쇠줄로 연결해 동상을 넘어뜨리려다가 이웃 주민에게 발각되자 쇠줄을 걷어내고 차를 몰고 줄행랑을 쳤다고 합니다. 이 바람에 육중한 동상은 15도 가량 기울어졌다고 합니다.

공격당한 레이건의 동상은 뉴포트비치 시의회가 레이건 탄생 100주년을 맞아 6만 달러를 들여 만들어 지난 10월 9일 세운 것입니다. 경찰은 단순 절도 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레이건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동상이 세워지고, 또 그 동상이 끌어 내려지기도 하면서 역사는 흘러가고 인물은 재평가를 받습니다. 한 세대를 지나 미국인들의 가슴에 되살아난 레이건이 이번엔 어떤 의미가 될지...지켜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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