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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파판드레우 총리, 도박의 종착역은?

[취재파일] 파판드레우 총리, 도박의 종착역은?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지난 한 주일 동안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10월 26일 브뤼셀에 모인 유로존 17개국 정상들이 자정을 넘겨가며 토론을 벌인 끝에, 27일 새벽 재정위기 극복방안에 합의하면서 유로존의 위기는 그 해법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주말을 지낸 뒤 31일, 느닷없이 파판드레우 총리가 재정위기 극복방안의 핵심인 그리스 2차 구제금융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는 작년 5월 유로존과 IMF로부터 1,100억 유로 규모의 1차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650억 유로(6차분 80억 유로 미포함)가 집행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유로존 정상회의는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1,090억 유로를 2014년까지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추가 재정긴축안을 마련해 10월 20일 의회 표결을 거쳐 승인했습니다. 당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며 국민적인 저항이 이어졌지만, 구제금융을 위한 재정긴축안의 불가피성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합의가 이뤄졌던 것입니다.

그 일주일 뒤인 10월27일 유로존 정상회의 합의안에서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안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국채에 대한 민간 채권기관들의 손실률(hair cut)을 21%에서 50%로 높인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유럽 은행들에 대한 그리스의 국가 부채 절반을 사실상 탕감해준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 입장에서는 훨씬 좋아진 것입니다. 손실률 50%에 따라 부채 탕감액수가 1,00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다만, 이렇게 손실률을 대폭 높인 대신, 추가 구제금융 지원금액을 1,090억 유로에서 1,000억 유로로 소폭 줄이긴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가 ‘약간’ 변경된(그리고 개선된) 2차 구제금융안에 대해 문제 삼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파판드레우 총리가 국민투표 실시를 추진한 것은, 2차 구제금융안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국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0월 20일 재정긴축안 의회 표결을 전후해 벌어진 전국적인 총파업과 이후 계속되는 시위 과정에서 파판드레우 총리의 지지도는 14%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야당의 총리 사퇴와 조기 총선 요구도 거셌고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긴축 정책의 실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돌파구로 제시된 것이 국민투표 실시였습니다. 변경된 2차 구제금융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면서 유로존 존속 여부를 연계할 경우, 유로존에 남기 위해서는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긴축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국제 사회의 반응이었습니다. 금융시장이 급속하게 혼란에 빠지면서 유로존과 IMF가 강한 압박을 가해 왔습니다. G20 정상회의 전날 프랑스 칸으로 ‘소환’ 당한 파판드레우 총리는 독일, 프랑스 정상과 라가르드 IMF 총재 등으로부터 면박에 가까운 질책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이런 질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차 구제금융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던 6차분 지원 80억 유로의 집행이 유보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로서는 자칫 디폴트를 선언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재무장관을 비롯한 일부 핵심 각료들이 국민투표 실시에 반대하고 나섰고, 결국 파판드레우 총리는 국민투표 실시를 철회하게 된 것입니다.

                 


의회의 신임투표에서 재신임을 받기는 했지만, 파판드레우 총리의 지도력은 이미 수습이 어려울 만큼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번 재신임이 명예로운 퇴진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벌써 재무장관이 차기 총리로 언급되고 있기도 합니다. 2009년 10월 총리에 오른 파판드레우 총리는 재정위기 대응만 해오다 결국 2년 만에 퇴진의 기로에 놓인 것입니다.

파판드레우 총리의 운명은 부친인 고(故)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업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합니다. 아버지 파판드레우는 현재의 집권 사회당을 창당해 1981~1989년과 1993~1996년 두 차례 총리를 지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주요 기업체들을 국유화하며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서 국고를 고갈시켰고, 비효율성이 만연해 그리스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재정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 파판드레우 총리가 뿌려놓은 씨앗을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가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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