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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동 포르노' 다운로드하면 무기징역?

[취재파일] '아동 포르노' 다운로드하면 무기징역?

The Eighth Amendment (Amendment VIII)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Excessive bail shall not be required, nor excessive fines imposed, nor cruel and unusual punishments inflicted." - "美 연방헌법 수정 8조: 과다한 보석금을 요구하거나, 과다한 벌금을 과하거나, 잔혹하고 비상식적인 형벌을 과하지 못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배고픔을 못 이겨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무려 19년간 옥살이를 합니다. 죄는 죄이되, 그 형벌은 너무도 과도했고 한 사람의 인생은 잔혹한 법에 의해 무참히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교양과목으로 수강했던 법학 개론 시간에 '죄형 법정주의'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납니다. 죄형 법정주의의 파생 원칙이라던  '적정성의 원칙' 혹은 '비례의 원칙'은 말하자면 "형벌의 부과는 죄의 경중에 비례하여 적절해야 한다"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장발장 처럼 단순 절도를 했는데 무기형에 가까운 형을 부과한다거나 살인을 했는데도 징역 3년형으로 끝낸다든가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법은 스스로의 정당성과 권위를 잃고 말 겁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근대 국가들이 헌법의 모델로 삼은 미 연방 헌법의 수정 8조는 바로 이같은 법의 흠결을 보완하고자 마련된 장치인 것입니다.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을 금지하는 이 '수정 8조'의 판례 적용을 놓고 미국 내에서는 여러 차례 논란이 빚어지곤 했습니다. 주로 사형제도와 관련된 논란이었습니다. 사형제도 자체가 수정헌법 8조를 위반한 위헌이라는 논란속에 미 연방 대법원은 지난 1972년 사형제를 금지했다가 1976년 이후 다시 사형을 합법화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형제도는 합법화 되었지만 사형 방식을 두고 또 다시 논란이 번졌습니다. 미국 전체 50개주 가운데 36개주에서 채택한 독극물 주사 방식과 네브라스카 주에서만 유일하게 시행되는 전기 의자 방식가운데 어느 쪽이 수정 헌법 8조를 위반한 잔혹한 형벌인가에 대한 논란이었습니다.

2008년 2월 네브라스카주 대법원은 전기의자 사용이 불필요하게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전기 의자에서 숨진 한 사형수가 코피를 흘린 채 숨진 일이 있었는데요, 조사 결과 사형수는 전기 쇼크로 숨진 것이 아니라 입에 씌운 마개에 피가 배어 질식해 숨졌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전기의자 방식이 그만큼 잔혹하다는 증거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겁니다.

그렇다면 독극물 주사 방식에 대해서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두 달 뒤인 2008년 4월, 미 연방 대법원은 독극물 주입에 의한 사형방식이 수정 헌법 8조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7개월간의 심리 기간동안 독극물이 사형수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지, 마취는 충분히 이뤄지는지,그리고 독극물로 사용되는 약품은 최선인지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고 발표했습니다.

형벌의 과잉 논란은 개별 사건의 양형에 있어서도 항상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성 범죄, 특히 아동에 대한 성 범죄에 대한 엄중한 단죄와 가중 처벌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긴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목숨을 빼앗지도 않은 성범죄자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것이 과연 온당할까요?

                 

미국 연방대법원은 성범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지난 1977년 강간범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지만 이후 피해자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성범죄자에 가혹한 처벌이라는 반란도 거셌습니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강간범에 대한 사형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을 금지한 수정헌법 8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결국 미 연방 대법원은 지난 2008년 피해자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사형처벌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처벌'을 금지한 수정헌법 8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은 '아동 성범죄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거나, 가해자가 피해자를 숨지게 하려 할 의도가 없었다면 범죄자에 대해 사형 처벌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여전히 찬반 양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성년 성범죄에 대한 중형 선고를 놓고 미국 법조계가 또 다시 어수선합니다. 플로리다에 사는 올해 26살 청년 '대니얼 빌카' 사건 때문입니다. 빌카는 지난해 1월 인터넷에서 아동 성학대 사진과 영상을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해오다가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빌카는 454건이나 되는 포르노물을 수집했지만 빌카가 실제로 아동을 성폭행하거나 학대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빌카에게는 다른 범죄 경력도 없었습니다.

플로리다주 콜리어카운티 순회법원은 지난 3일 아동 포르노물 소지 혐의로 기소된 빌카에 대해 연쇄살인과 어린이 유괴 및 성폭행 등 반인륜적 극악 범죄와 같은 1급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법원의 유죄 판결에 앞서 빌카에게 혐의를 인정하면 징역25년으로 형량을 깎아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빌카는 거절했습니다.

빌카의 변호인은 이전 콜리어카운티에서 발생한 유사 범죄보다 형량이 훨씬 더 무겁다며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습니다. 여학생과 성관계를 맺어 아동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학교 밴드부 지도교사에게같은 법원은 지난 4월 징역 30년형을 선고했다며 빌카는 단지 아동 포르노물을 다운로드 받아 보관했을 뿐 어떠한 성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빌카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을 겁니다.

검찰 측은 "아동포르노물 소지는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에 화가 난다"면서 이번 판결은 아동성범죄 근절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라고 평가했습니다.

판결을 내린 프레드 하트 판사는 아동포르노물 소지죄에 대한 플로리다주의 양형 기준이 최소 징역 125년이란 점 들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트 판사는 또 빌카가 검사의 사전 형량조정 제안을 거부한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법학자들과 법조인 상당수는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을 부과하지 못한다'는 수정헌법 제8조에 위배되는 판결이라면서 재판부와 검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론들도 동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빌카가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했더라면 오히려 더 가벼운형을 받았을 것이라며 법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차제에 불합리한 양형 기준 같은 미국 형사법의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잇따른 충격적인 아동 성범죄 사건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아동 성범죄자들을 중형에 처해 아동 성범죄를 근절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아동 성범죄자들에 대한 신상공개와 공소시효 폐지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이른바 '도가니 법'으로 불리는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장애인이나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를 없애고 최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동안의 솜방망이 처벌이 범죄 근절에 무기력했음을 자인하고 법의 엄한 다스림을 통해 더 이상의 끔찍한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일 겁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해도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마냥 이상향은 아닐 겁니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를 경계해야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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