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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술로 해석한 쓰나미의 공포

[취재파일] 미술로 해석한 쓰나미의 공포

코노이케 토모코 vs. 다카시 쿠리바야시

권란 기자 harasho@sbs.co.kr

작성 2011.11.05 14:03 수정 2013.10.29 21: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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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9.11으로 불리는 테러 사건. 미국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주의, 종교와 문화 간 융합 등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가 얽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열도를 덮친 것입니다. 삽시간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지진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그 여파로 발생한 원전 사고도 다시금 자연의 무서움을 보여줬습니다.

동시대의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예술로 옮기는 사람들에게도 3.11 대지진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연 앞에 인간이 이렇게 무너져 버리다니. 자연이 이렇게 성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은 심지어 작가들의 작업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중진 여성작가 코노이케 토모코. 그녀는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도쿄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진은 처음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시작이 됐지만, 그 진동은 도쿄에까지 느껴졌다고 합니다.

지진에는 워낙 이력이 난 일본인이지만,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대형 재해. 주변에서, TV에서 보이는 모습은 ‘끔찍’ 그 자체였습니다.

토모코는 원래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중간자적인 존재, 반인반수 늑대를 동경하고 작품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상상 속의 반인반수 늑대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던 태초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Voice-Donning animal skins and braided grass, 2011, Mixd media, 175×135cm

지진을 겪고 나서 토모코는 다시 한 번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게 됩니다.


            Quaking Island, 2011, Mixed Media, 175×135cm

지진 직후 토모코가 그린 그림입니다. 눈, 코, 입, 사람 얼굴을 한 섬이 검푸른 파도에 휩쓸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섬이 얼굴을 가진 이유. 섬도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기 때문이겠죠. 섬은 성난 파도에 놀라고 무서웠는지 눈까지 빨개졌습니다. 얼굴빛, 섬 색깔도 빨갛습니다. 보통 빨간 색은 ‘주의’, ‘경고’, 뭐 이런 의미이죠. 섬은 이미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얼굴까지 화가 차오른 그 찰나, 파도가 이런 섬을 보다 못해, 대신 인간들을 때려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Tsunami, 2011, Pencil and color pencil on paper, 21×29.4cm

소년인지 소녀인지, 이 아이의 머리카락은 파도입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니, 일본 사람들이 겪었던 바로 그 쓰나미의 형상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카락 사이사이 배와 사람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쓰나미, 결국 이번 재해는 자연이 무자비하게 인간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공격했다는 의미일까요?

자연과 인간의 경계, 사람 사이의 경계, ‘경계’를 주제로 활동해오고 있는 일본 작가 다카시 쿠리바야시도 대지진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었습니다. 쿠리바야시는 자연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온 날들을 반성합니다.

쿠리바야시는 이번 대지진이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대의 경계선’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작품인생에도 “지진이 ‘경계선’이 되어 3.11 이전과 이후의 작품이 존재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Iceberg, 2011

투명한 냉동고 속 꽁꽁 얼어버린 빙산. 그 안에는 그 곳에서 살았던 나뭇잎, 바로 생명체가 그대로 얼어붙어 있습니다. 사실 이 나뭇잎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에서 가져왔습니다. 방사능의 공포로 모든 사람이 떠나버린 그 곳에 꼼짝하지 못하고 남아있던 나뭇잎입니다. 지진 전부터 땅의 진동을 느꼈을 나뭇잎, 끔찍한 순간을 겪었고, 어쩌면 이미 방사능에 오염됐을지도 모릅니다.

쿠리바야시는 바로 그 순간을 화석처럼 얼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대 동물의 화석이 발견되면, 그때서야 그 동물이 살았던 곳을 생각하게 되죠. 지진의 아픔과 기억도 세월이 지나면 다 빙산과 함께 얼어버리겠죠. 먼 훗날 언젠가, 빙산이 녹아 방사능에 오염된 나뭇잎이 발견되면, 그제야 어렴풋이 ‘아.. 우리가 이런 큰일을 겪었었구나!’ 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장면을 보며 우리는 다시금 자연의 힘 앞에 떨었습니다. 그 힘이 언제 발현될 지 예상할 수도 없어서 더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지진의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그 충격과 기억을 되새김질 하듯 작품을 남겼습니다. 깜빡깜빡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에게 가끔씩이라도 그 순간을 기억하라는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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