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도대체 '고음악'이 뭐길래 ②

옛 음악이라 더 새로운 아이러니!

[취재파일] 도대체 '고음악'이 뭐길래 ②
*1편에서 이어집니다.

먼저 정의부터. ‘고음악’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래된 음악, 옛 음악이다. 사전에서 ‘고음악’을 찾아보면 대개 바로크 시대와 그 이전의 음악을 말한다고 설명돼 있다. 바로크 음악은 보통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가리킨다. 바흐, 헨델, 비발디 등이 잘 알려진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이다. (이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고전주의 음악가로 분류되고, 이후 낭만파로 이어진다.)

그런데 ‘고음악’에는 음악의 시대 개념도 들어가지만, 사실은 이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는가도 중요하다. 우리가 요즘 보는 서양 악기들은 모두 산업혁명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대규모 극장과 청중에 맞춰 크고 매끄러운 소리를 내도록 개량된 모습이다. 이렇게 바뀐 악기로는 작곡가가 그 곡을 작곡한 의도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작곡가가 살아있을 당시에 사용되던 악기들을 써서 그 시대의 방식대로 연주하는 것. 이것이 통상 '고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악에 담긴 뜻이다.

그래서 요즘은 '고음악'이라는 말 대신 '당대 연주'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요즘 '당대 연주'에서 주로 연주되는 곡들은 바흐, 헨델 등의 바로크 시대에서부터 모차르트를 포함한 고전주의 초기까지의 작품들이 많지만, 최근에는 낭만파인 슈베르트, 멘델스존의 작품까지로 '당대 연주'의 폭이 넓혀지고 있는 상황이니, 이런 '연주 양식'을 '고음악'이라는 말로 묶기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자주 사용되는 '고악기'라는 말도 약간 오해의 소지는 있다. ‘고악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옛날 악기'라는 뜻인데, 이는 '고악기'들이 반드시 몇백 년 묵은 '골동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비올라 다 감바' 같은, 16, 17세기에 많이 쓰였던 저음 현악기는 한 때 자취를 감췄었지만, 현대에 와서 재조명 받고 활발히 연주되고 있다. 이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들이 요즘 사용하는 악기는 '옛날 방식으로, 현대에 만들어진 악기'인 셈이다. 그래서 ‘고악기’ 대신 ‘시대 악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작곡가 생존시의 악기를 사용해 그 시대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을 ‘원전 연주’, 혹은 ‘정격 연주’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원전' 혹은 '정격'이라는 말에는, '이 방식이 아니면 틀리다'는 의미가 은연중에 깃들여 있기 때문에 요즘 들어서는 잘 사용하지 않으려는 게 음악계의 추세라고 한다.

그럼 옛날 악기들과 현대 악기들은 뭐가 다른가. 국내 고음악 공연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강해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바로크 시대 음악 (바로크 음악은 우리가 통상 말하는 '고음악'의 중심을 이루는 시대죠. 물론 그 이전의 음악들도 있지만)은 언어적인 음악이예요. 느끼는 음악이 아니고 이해되는 음악이죠. 그래서 그 시대 음악은 말하는 음악으로서 의사 전달에 유리한 악기들로 연주됐어요. 쳄발로라는 악기를 예를 들어보면, 기타처럼 뜯는 구조예요. 피아노에 비해 명확하게 '발음'하기 유리해요. 음 하나하나를 또렷또렷하게 소리 낼 수 있죠. 여러 성부가 같이 가더라도 모든 성부들이 각기 다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악기예요. (고음악의 거장 아르농쿠르의 역저 제목이 '바로크음악은 '말'한다'이다. 강해근 교수 번역으로 국내에 나와있다.)

이에 비해 현대악기들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합니다. 이해되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음악이죠. 현대악기는 음과 음 사이를 가능하면 끊어지지 않게, 매끄럽게 연결하는 게 최대 목표예요. '레가토'라고 하잖아요. 노래하듯이. 음과 음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죠. 현대, 낭만주의 이후 음악에서는 레가토를 제일 중요한 표현 요소로 생각하니까요."


옛날 악기는 악기의 재료가 갖고 있는 성질이 여실히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목관 악기는 그야말로 목관 악기이고, 금관 악기는 그야말로 금관 악기다. 어릴 때 음악 수업 시간에 ‘플륫은 목관 악기’라고 배웠던 게 생각 나는가. 나는 왜 ‘목관악기’인 플륫이 금속성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 크고 매끄러운 소리를 내기 위해 그렇게 '개조'된 것이다. 그러나 당대 연주에서는 진짜 '나무로 만들어진' 플륫을 볼 수 있다.

옛 악기의 현은 '거트 현'이다. 양의 창자가 재료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고, 소리는 둔탁하게 느껴지지만 깊이가 있다. 현대 악기의 현은 금속성 현이다. 재료부터 다르니, 소리도 다를 수밖에 없다. 원래는 현대 첼로를 전공했다가 지금은 바로크 첼로인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고 있는 강효정 씨는 ‘현대 악기와 비교하면 음량이 굉장히 작고 약점이 많아 보이지만, 굉장히 섬세하고, 자연에 가깝고,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 옛 악기의 매력’이라고 했다.

음악이 변해가는 과정과 악기가 변해가는 과정은 일치한다. 그래서 그 시대 음악은 그 시대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는 게 고음악 애호가들의 생각이다. 음악이 변하기 때문에 악기가 변하고, 악기가 변해서 음악이 변하는 법, 쇼팽의 피아노 곡들은 피아노라는 악기가 없었으면 안 나왔을 것이며, 리스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악기와 음악은 항상 같이 가기 때문에, 그 시대 악기는 그 시대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세팅'된다는 것이다. 옛 음악은 옛 악기의 소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그 악기의 '약점'까지도 포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는 국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가야금 개량 과정을 보면, 예전엔 명주실을 사용하던 현을 금속성 재료로 만들거나, 현을 덧붙여서 더 폭넓은 음역과 음량을 소화하려 하는 것이, 서양 악기의 변천사와 비슷하지 않은가. 현대의 공연장에서 연주하기 위해 이렇게 개량한 것이다. 이렇게 '개량된' 가야금은 이름만 가야금이지 옛 가야금과는 크게 다른 악기이다.

그럼 왜 당대 연주 공연이 늘어나고 있는가. 사람들이 굉장히 오랫동안 같은 양식의 연주만을 들어왔기 때문에 식상할 때가 됐고, 이런 시점에서 '오래된 음악'이 오히려 '새로운 음악'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같은 곡을 현대 악기와 옛 악기 연주로 비교해 들어보면 소리도 다르고, 편성도 다르다. 차이를 눈으로도, 귀로도 구별할 수 있다.

'고음악 열풍'의 밑바닥에는 자연으로의 회귀, 대규모 산업사회나 획일화에 대한 반발 같은 흐름도 깔려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오래된 것이라서 더 새로운' 아이러니가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래서 2007년에 썼던 기사를 ‘고음악 열풍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새로운 소리, 새로운 음악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당시 리포트 다시보기 클릭) 이번에 쓴 기사에 ‘오래된 음악이라 오히려 더 새롭다’는 표현을 쓴 것도 당시 했던 고민이 담겨 있는 셈이다.

방송 리포트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뻔히 다 아는 것만 기사로 쓸 수도 없다. 아주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소재를 기사로 다룰 때, 항상 고민스럽다. 바라건대, 도대체 ‘고음악’이라는 게 뭔지 궁금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방송 기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던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글로 조금이나마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면 좋겠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