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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번의 '무죄', 한명숙 판결 스타일 분석해보니…②

'한방' 김형두 부장판사 vs. '잘근잘근' 김우진 부장판사

[취재파일] 2번의 '무죄', 한명숙 판결 스타일 분석해보니…②
사설이 길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5만 달러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형두 부장판사, 9억 원 사건은 같은 법원 형사합의22부 김우진 부장판사가 심리를 맡았습니다.

사법연수원 19기인 김형두 부장판사는 2009년 영장전담부장판사 시절 '5만 달러 사건'의 발단이 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 형사합의부 재판장이 되어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튀는 판결을 하는 것을 보니 법원 내 진보성향으로 꼽히는 '우리법연구회' 소속 아니냐"며 알아보는 '헤프닝'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ㆍ송무제도연구법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데다, 법원 내 엘리트 중에 엘리트들만 들어간다는 '민사판례연구회' 소속이어서, 보수언론에서 '5만 달러 사건' 무죄에 대해 크게 반발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김형두 부장판사는 취재기자 대 취재원으로 만난 법조인을 넘어서,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생님 같고 아버지 같은 분이기도 합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온화한 성격에 양쪽의 극한 대립을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조정하는 중재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자기 관리도 뛰어나서 늘 무언가를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법조기자인 저에게 오히려 외국 법조 기자들의 활약상을 소개해주기도 했지요. 이런 성품은 재판에서도 빛이 났습니다.

5만 달러 사건은 지난해 3월 11일 시작돼 한달간 집중심리로 이틀에 한번꼴로 13차례 공판이 진했됐고 사상 처음 국무총리 공관에서 현장 검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첨예해서 재판은 매번 자정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검찰과 변호인 간에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도 김부장판사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판의 주도권을 재판장이 쥐고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었습니다.

올해 9억 원 사건을 맡은 김우진 부장판사는 사법시험 29회·사법연수원 19기로, 해당 기수에서 1·2등을 번갈아 했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 판사입니다. 또 부친이 검찰 출신으로 서울고검장을 지낸 김양균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기도 한 법조인 가족 출신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검사의 아들이 검찰을 울렸다'라는 말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 국제담당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원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장 등 역시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친 파워 엘리트 판사입니다.

김우진 부장판사의 재판 과정은 분위기가 전 재판보다 더 좋지 못했습니다. 5만 달러 사건이 무죄가 되면서 검찰에서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최정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전원을 법정에 투입했고, '정치 검찰의 한명숙 두 번 죽이기'라며 변호인단도 악에 받칠 대로 받친 상태였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첫 공판 시작 이후 지난 9월 19일 마지막 공판까지 23차례 공판이 진행됐는데, 매번 자정을 넘기기 일쑤, 검찰과 변호인단의 신경전도 말싸움 수준으로 번지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특히, 두번째 공판에서 돈을 줬다던 한만호 한신건영 전 대표가 법정에서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이 생기면서 검찰과 변호인단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고 법정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지요.

저는 중간에 검찰 출입으로 바뀌면서 김 부장판사의 공판을 초반 서너 번 정도만 들었습니다. 몇번 만나진 못했지만 김우진 부장판사는 매우 신중하고 사려깊은 전형적인 판사 스타일로 판단됩니다. 김우진 부장판사는 이런 양측의 주장을 최대한 수용하고 들어주고 검토해주며 재판장의 개인 의견 표출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이런 배경들을 감안하고 두 재판의 판결을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이라는 부분과도 연결되는데요, "법관은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 판결의 대전제입니다. 여기서 양심은 '객관적 양심'입니다. 같은 사람의 같은 죄를 놓고 판사마다 판결이 달라진다면 그건 올바른 판결이 아니겠지요. 객관적 양심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법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겠지요. 저는 이 부분을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이라고 봅니다. 이 주관적 판단도 대전제는 객관적 양심, 그 근본은 결국 법과 판례입니다.

스타일이 크게 다른 두 부장판사였지만, 공통적으로 세운 기준이 되는 판례가 있습니다. 뇌물 판결의 '전설적인 판례'로 통하는 대법원 판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뇌물죄에 있어서 수뢰자로 지목된 피고인이 수뢰사실을 시종일관 부인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금융자료 등 물증이 없는 경우에 증뢰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증뢰자의 진술이 증거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어야 하고,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진술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 등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됨, 그 진술로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 특히 그에게 어떤 범죄의 혐의가 있고 그 혐의에 대하여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중인 경우에는 이를 이용한 협박이나 회유 등의 의심이 있어 그 진술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는 경우에도 그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 등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2000도5701 광주군수 뇌물사건,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서비스.

두 사건 모두 백 페이지가 넘는 판결문 분량이지만, 이 판례를 한글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5만 달러 사건과 9억 원 사건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두 사건은 '물증 없이 뇌물(금품) 공여자의 진술만 있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런 조건일 경우, 해결 공식이 바로 이 판례인 것입니다. 마치 2차 방정식에서 '근의 공식'에 대입하는 것과 같습니다.

5만 달러 사건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재판 과정에서 '돈을 줬다'는 부분은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돈의 액수를 10만 달러에서 3만 달러, 다시 5만 달러라고 바꿨고 전달 방식도 직접 줬다고 했다가 총리 공관 만찬장 의자 위에 놓고 나왔다는 둥 '오락가락' 진술을 했습니다.

9억 원 사건에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는 한 전 총리가 민주당 대통령 경선 과정 중에 쓰라며 3차례에 걸쳐 현금 4억8천만 원과 1억 원짜리 수표 한장, 미화 32만7500달러 등 9억 원을 줬다고 했다가,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를 되찾을 욕심에 수십 차례 검찰조사 때 허위진술을 했다"며 그 동안의 진술을 180도 뒤집었습니다.

                 


두 재판장 모두 판례의 공식에 따라 두 사람의 '인간됨'을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라 사건을 심리하는 방식은 두 재판장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김형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쟁점을 우선순위별로 ▲곽영욱의 5만 달러 공여 ▲공기업 사장 취임에 관한 청탁 및 한 전 총리의 지원 ▲5만 달러를 준 사실이 인정되면 청탁에 따른 대가성 여부 ▲뇌물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주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받았는지 등 4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검찰은 뇌물 사건인 만큼, 돈이 오고 간 다음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의 영향력을 통해 공기업 사장 취임을 알아봐준 것이 바로 '대가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선고 당일 선고 초반에 김형두 부장판사는 "곽 전 사장의 '인간됨'을 볼 때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억과 다른 진술을 하는 성격으로 보인다"며 곽 전 사장의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5만 달러를 줬다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는 만큼 나머지 쟁점은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중 대부분을 '판단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이론과 전략에 뛰어난 김형두 부장판사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김우진 부장판사는 "한 전 총리의 9억 원 수수를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증거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검찰 진술 뿐인데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 합리성과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고 진술 자체에 추가 기소를 피하려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도 보여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동시에 법정에서 "9억 원을 주지 않았다"고 뒤집은 진술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돈을 준 사람의 진술을 믿을 수 없고 검찰과 변호인이 제시한 수십 가지 정황 증거들로 사실관계를 복원해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김우진 부장판사는 몇월 며칠에 한 전 총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차량 선팅 정도는 어떠했는지, 도로에 몇 분에 차량 몇 대가 지나갔는지 '해부하듯' 사실관계를 복원했습니다. 그리고는 3차례에 걸쳐 1억 원 수표와 미화를 포함해 9억 원 상당의 돈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줬다는 검찰의 공소사실 세부사항까지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열가지 문제에 모두 답을 달듯이 말입니다.

초반에 말씀드렸듯 판결문은 수학처럼 완결된 하나의 체계이자 공식같이 짜여 있습니다. 한 전 총리의 두 번의 무죄라는 같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도입된 공식은 같았으나, 풀어내는 스타일은 '이론가 vs. 모범생'으로 달랐습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한방'에 훅 가는 게 아팠을지, '잘근잘근' 깨지는 게 아팠을지 추측하기는 쉽지 않네요.

짧은 법조기자 생활을 했지만 판사들을 보면 '참 외롭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사회적 생명'에 시한부 선고를 내려야 하는 고민은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겠지요. 이번처럼 거물급 정치인과 조직의 사활을 걸고 나온 검찰 사이에서 어떻게 판결하든 다른 한쪽의 반발이 없을 수 없는 상황은 그 부담이 더하겠지요. 누구보다 고뇌했을 두 부장판사는, 이론가이든 전략가이든 모범생이든, 궁극적으로는 '결국 판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신 앞에 선 단독자처럼, 이들이 기댄 것은 결국 '법신'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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