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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리스 사태, '불난 집'에 비유하자면

-'불 끄고 망하나, 불 타서 망하나'

유럽연합 정상들이 마련한 빚 관련 위기 해법'을 받아들일지 말지,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그리스 총리의 선언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시끄럽습니다. 요 며칠 이 때문에 증시에서 돈 잃은 분들도 적지 않으실 겁니다.

약칭 '그리스 문제'는 워낙 복잡해서, 관련 기사를 쓰는 저희같은 기자들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 8뉴스에서는 좀 쉬운 비유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자, 어느 동네를 하나 상정하지요. '유럽촌'이라고 합시다. 여기에, 못 사는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집 이름은 '그리스'입니다. 이 집에 불이 납니다. 처음엔 못 본 척 하려던 이웃의 부잣집들은, 점차 '남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불길이 자기네 집으로 옮겨붙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불을 끄기는 해야겠는데, 뭘로 어떻게 끌지가 문제입니다. 물통과 호스는 얼마만해야 할지, 누가 내놓을지, 누구네 집 우물을 퍼다 끌지, 일꾼은 누가 댈지 등등.. 도무지 답이 안 나오고 시간만 가는 사이, 동네가 몽땅 불길에 휩싸일 위기가 닥쳤습니다.

급한 마음에, 동네 제일 부잣집 둘이서 일단 합의를 봅니다. 왕창 큰 물통을 쓰기로. (부잣집 둘=독일과 프랑스입니다.)  아마도 독일집 우물을 제일 많이 퍼다 쓰게 될 것 같은데, 그런 문제들은 일단 뒤로 밀렸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 유럽촌과 거래하느라 돈이 물린 사람들, 유럽촌이 홀랑 타면 그다음 불길이 옮겨붙을 옆동네 사람들은 일단은 안도하고 지켜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때 '가난한 집' 그리스가 외치고 나선 겁니다. "잠깐!" 그리고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 관둡시다. 불 꺼주는 건 고맙지만, 불 끄고 집 고치는 비용을 우리보고 다 부담하라고? 모자라면 세간도 내다 팔라고? 불 끄고 망하나, 불 타서 망하나 망하는 건 마찬가진데, 관두자고요. 어디 우리 집만 타고 끝나는지 두고 봅시다."

이게 바로 그리스의 국민투표 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 정상회의의 해법은, 그리스가 초고강도 긴축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걸 전제로 구제금융을 주면서 그리스를 연명시킨다 (= 무질서한 국가부도가 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리스가 씀씀이를 줄이지 않는다면 독일, 프랑스 등 각국은 "유럽의 공동장래를 위해 부담을 나눠집시다"라고 각자 자기네 납세자 즉 유권자를 설득할 명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가 그 전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겁니다. "더이상의 긴축은 못견디겠다"는 겁니다.
이는 그리스 경제의 독특한 처지 때문입니다. 비슷한 외환위기를 겪고 살아난 우리나라와 달리, 그리스는 관광업 외에 딱히 다른 산업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원화가치 하락을 토대로 수출을 크게 늘려 달러를 벌어들이고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리스는 그게 안 됩니다.

관광객이라도 많이 불러들여 외화를 벌면 좋을텐데, '유로'라는 공통화폐에 묶여있으니 그것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리스는 노동인구의 10%가 정부 부분에 고용돼 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통계와 기사가 있는데, 대체로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리스가 복지선진국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핀트가 조금 어긋났다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는 나랏돈으로 이런 저런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먹여살려 왔으나, 그 모델을 지탱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공공부문 고용제공 자체가 복지였는데, 나라의 곳간이 비어서 그게 지속가능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죠.

"정부 지출을 줄이"려면 그리스는 공공부문 해고를 늘리고, 사람들의 급여와 연금을 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도 이를 재투자해 일으킬 산업이 있으면 (90년대 한국처럼) 또 모르겠는데, 그리스는 경제구조상 그냥 경제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긴축을 한다고 해도 앞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마지막으로 동네 부잣집들한테 승부수를 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각국 은행들이 그리스 채권에 대해 50% 이상의 손실율을 감수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예전에 합의된 것은 21% 수준)

그러나 이는 정치적 합의일 뿐, 은행들에게 강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 채권을 사서 들고 있는 은행들이 지금 갖고 있는 채권을 포기하고, 액면가가 50%로 줄어든 채권을 새로 받아야만 합니다. 이런 '제살깎기'를 선뜻 하려 나서는 은행들이 있을까요? 별로 없겠지요. 그리스의 '승부수'는 이런 은행들에 대해서도 압박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반토막 채권으로의 교환을 받아들이시오. 지금 채권 교환에 응해준다면 나중에 50%는 받겠지만, 이러다가 우리가 정말 부도나면 그땐 정말 국물도 없소."라는 메시지가 은행들에게 가는 것이거든요.

한동안 해결 전망이 보이나 싶던 그리스 문제는, 다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당장 G20 회의에서, 유럽 주요국들은 그리스에 대해 '2차 구제금융 제공 중단'을 통보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제금융 지급을 중단할 뿐 아니라,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No'가 나오면 (즉, 긴축안을 거부하게 되면) 그리스를 진짜로 부도처리할테니, 채권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마라'는 통첩을 보냈다는 겁니다.

유럽 주요국들이 그리스에 제시한 시한은 12월18일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구제금융 수혈 없이 그리스가 각종 고지서를 막을 수 있을지? 세계 금융가가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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