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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리를 보다…포석정에 대한 해석

[취재파일] 소리를 보다…포석정에 대한 해석

강익중 vs.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 '포석정을 그리며'

권란 기자 harasho@sbs.co.kr

작성 2011.11.02 13:57 수정 2013.10.29 21: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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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을 고를 때는 모양도 중요하지만, 부딪힐 때 나는 소리도 꽤 중요한 요소로 꼽힙니다. 맑고 투명한 소리가 나야 혀로만이 아니라 귀로도 와인의 맛을 함께 음미하는 기분이 나기 때문이겠죠.

우리 전통 술 문화도 ‘풍취’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신라시대 포석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흘러가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놓고 바람과 달빛을 벗 삼아 술을 마시던 곳이지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귀 옆을 스치는 바람 소리, 풀벌레와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 잔 들이키면, 세상만사 걱정이 다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달항아리’ 작가 강익중은 이런 포석정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포석정 모양의 작품 안에 ‘달항아리’를 풍덩 빠뜨렸습니다.

                

「산, 달 항아리」라는 작품입니다. 산 주위를 흐르고 있는 검은 물 위를 2백여 개의 달항아리들이 떠다닙니다.

                

산과 물과 달항아리가 어우러진 모습이 아주 멋집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만으로도 운치가 있는데, 그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게 있습니다. 바로 소리입니다. 물을 따라 흐르며 서로 부딪히는 달항아리 소리입니다.

 달항아리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자세히 보다보면, 2백 개가 넘는 달항아리 모양이 제각각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약간 찌그러진 달 항아리부터, 정말 달처럼 생긴 항아리까지........ 이렇게 모양이 다르다 보니, 아래 흐르고 있는 검은 물(물에 먹물을 풀어 놓았음)이 묻는 모양새도 가지각색입니다.

강 작가는 이 달항아리가 인간 사회의 모습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생김새와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개성이 다르니 세상의 때가 묻는 방식도 다 다릅니다. 길다랗고 좁은 항아리는 좀 더 깊이 검은 물속에 담궈져 검은 때를 묻히고, 널찍한 모양새의 항아리는 아랫부분만 조금 검은 줄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모양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다보니 물에 흘러가는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는 초고속으로 쭉쭉 뻗어 나가고, 누구는 천천히 천천히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달항아리들이 내는 소리는 이렇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끼리 부대끼고 부딪히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와장창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서로 정겹게 살을 맞대며 다정한 소리를 내기도 하는, 그런 소리말입니다.

                

프랑스 작가의 작품 가운데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의 ‘무제’입니다. 강익중 작가의 작품이 수묵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라면, 부르시에-무주노의 작품은 잔잔한 호수를 그린 수채화의 느낌입니다.

넓은 호수 같은 물 위에 139개의 하얀 자기가 둥둥 떠다닙니다. 물 안에는 장치를 달아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게 만들었는데요, 가운데를 기준으로 반동심원 모양으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 작가의 작품보다는 약간 인공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자기들이 내는 소리가 환상적입니다. 유리잔 연주 즉흥곡을 듣는 기분이랄까요. 전시회와 연주회를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작품을 바라보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까지 차분해집니다. 그래서 미술관은 일부러 저기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나 봅니다.

사실 부르시에-무주노는 작곡가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소리’가 빠지지 않습니다. 정형화된 작곡 작품이 아니라 즉흥적인 소리를 들려주는데, 그게 어떨 때는 완성된 곡보다 더 깊은 완성도 있게 들리고,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부르시에-무주노 작가는 포석정을 본 적이 없을텐데, 만약 포석정을 보게되면 뭐라고 말을 할까요. 작품 속 달항아리와 자기처럼 ‘미술가’라는 직업 외에는 전혀 다른 두 작가. 오묘하게 맞닿는 부분이 있고, 그게 이런 작품으로 탄생했나 봅니다.

* 이하 여담입니다. 지난 8월 포스코미술관에 전시됐던 강익중 작가의 「산, 달 항아리」에는 2백여 개의 달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달항아리를 보고 하도 탐내는 관람객이 많아서, 미술관 관계자들은 혹시 없어지는 게 있지는 않은지, 매일 달항아리 개수를 세었다고 하네요.

* 7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됐던 부르시에-무주노 작가의 작품은 수온이 30~32도를 유지해야 물이 원활하게 잘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시 초반에는 30도 이상을 유지하려고 물을 데우는 장치를 사용했었다는데요, 여름에 물 온도를 높여 놓으니 자꾸 작품 속에 모기 유충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결국 물 온도는 포기했다는 후일담입니다. 또, 전시장 가운데 떡하니 있는 이 작품에 설마 누가 빠지겠어....... 싶지만, 실제로 전시 기간 동안 2명이나 이 작품에 빠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수심이 40cm 정도로 깊지 않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는데요, 작품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픈 마음이 너무 앞섰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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