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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과학 수사로 밝힌 '마포 미군 성폭행 사건'

-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취재파일] 과학 수사로 밝힌 '마포 미군 성폭행 사건'

지난달 17일 서울 서교동의 한 고시원에서에서 발생한 미군의 성폭행 혐의 수사. 워낙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미군 범죄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익히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되살려 드리기 위해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지난달 17일 새벽 미8군 제1통신여단 소속 R 모 이병은 자신의 미군 동료와 함께 18살 A 양과 그 친구를 만납니다. 네 사람이 함께 보게 된 거죠. 압구정에서 한 시간 정도 술을 마신 뒤, 이들은 홍대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술자리를 가집니다. 이 가운데 피해자 A 양은 술에 만취해서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됐습니다.

R 이병은 A 양의 친구와 함께 A 양을 사건의 고시원으로 데려다 줍니다. (여성 전용이었지만 출입엔 아무런 제지가 없더군요.) 이후 R 이병은 고시원을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다시 A 양의 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새벽 5시 43분쯤 A 양의 방에 들어갔고 금세 방을 빠져나오던 이전과는 다르게 30여 분이 지난 새벽 6시 19분쯤 방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엔 노트북이 들려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이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게 피해자 측의 주장입니다.

R 이병은 지난 12일 2차 조사에서도 강력히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노트북을 훔친 사실은 인정하지만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합의 하에 유사 성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결국 R 이병에 대해 강제 추행이 아닌 성폭행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과연 경찰이 내세운 범죄 입증 논리는 무엇일까요?

경찰은 먼저 피해자와 합의 하에 유사 성행위를 했다는 R 이병의 논리를 반박합니다. 사건 당시 CCTV에 찍힌 피해자의 모습은 만취 그 자체였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고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을 잃은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건 합당치 않다는 겁니다. 또 CCTV 분석 결과 당시 A양이 구토를 많이 했기 때문에 유사 성행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정황 논리일 뿐 직접 증거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증거는 뭐가 있을까요? 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긴 DNA 분석 결과입니다. 먼저 피해 여학생의 방에서 발견된 휴지와 수건 등에서 R 이병의 DNA가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R 이병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경찰은 다음과 같은 분석 결과에서 혐의를 확신했다고 합니다. 피해 여학생의 속옷에서 DNA가 발견됐고 현장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됐다는 사실입니다. R 이병의 주장과 같다면 이곳에서 DNA와 혈흔이 발견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R 이병이 할 말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몸 속에서 DNA 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피해자의 몸 속에 R 이병의 DNA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없어졌을 것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피해자가 신고 전 두 차례 샤워를 했고, 사건 발생 뒤 신고까지 최소 24시간 이상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찰은 이런 상황을 종합해 단순 추행이 아닌 성폭행 혐의로 R 이병의 사건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 하고 변호인의 도움을 최대한 받는 것은 피의자의 인권을 위해 당연히 있어야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가진 한국 사회의 파장과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피해자를 생각하면 R 이병이 어서 자백하고 용서를 빌기를 바래봅니다. 주한미군은 해당 사건에 대해 사과했는데 R 이병 본인은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은 참 이상하기만 합니다. 자칫하면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할 뻔한 이번 사건을 마치 미국드라마 CSI처럼 과학 수사가 해결해 나갔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증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국립과학수사원에 부검이나 DNA 분석을 맡기면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적은 겁니다. 단지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이나 국과원 관계자들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범죄 수사의 발전을 위해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과학 수사가 발전할수록 억울한 사람은 더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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