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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70억분의 1' 그리고 '맬서스의 저주'

[취재파일] '70억분의 1' 그리고 '맬서스의 저주'
2011년 10월 31일, 내일이면 당신은 이제 70억분의 1이 되십니다! 이 지구에 주소지를 둔 인류가 마침내 70억 명을 돌파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세계 인구는 16억 5천만 명이 불과했습니다. 1927년에 20억을 넘겼고, 1959년에 베이비 붐을 타고 30억을 돌파했으며 1974년 40억, 1987년 50억을 훌쩍 뛰어넘더니 세기 말이었던 1999년 마침내 60억을 찍고 12년 만에 다시 70억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지구촌 인구가 불과 100년 사이 4배 가까이 급증한 겁니다.

유엔 산하 인구분과위원회는 10월 31일을 기해 생존 인구 중 70억 번째 신생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내친김에 유엔은 10월 31일을 ‘인구 70억의 날’로 잡았습니다. 인구 학자들은 통계를 근거로 1초 당 5명의 신생아가 지구촌 어디에선가 태어난다고 계산하면 10월 31일이 유력한 70억 돌파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념비적인 아기는 과연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서 첫 울음을 터뜨릴까요?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선진국의 인구 증가가 거의 정체된 만큼, 인구 70억명째 신생아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출생률이 높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에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유엔은 밝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각각 13억, 12억 명으로 세계 1, 2위 인구 대국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국과 인도 가운데 한 곳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황입니다. 이 두 나라 가운데 굳이 한 곳을 고르자면 아무래도 2020년 이전에 지구촌 최대의 인구 대국으로 등극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인도를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중국은 1979년부터 시행해 온 '1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공식적으로 출산율을 여성 1명당 1.5명으로 억제하면서 신생아 출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매년 인도에서는 2천65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반면 중국에서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186만 명이 새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70억 번째 아기가 어디서 태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이 복지기구인 ‘플랜 인터네셔널’은 인도의 인구 밀집지역인 우타르 프라데시 지역에서 태어날 여자 아기를 70억 번째 신생아로 공인하기로 일찌감치 방침을 정해뒀습니다.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여아 낙태 풍조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70억 명째 신생아의 출산을 축복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인구 폭발이 불러올 수많은 난제가 인류 앞에 놓여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식량과 물부족을 비롯한 자원 확보 전쟁과 환경 파괴 우려, 그리고 급격한 노령화에 따른 세대간 부양 문제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인구 폭발'에 대한 경고는 일찌감치 250년전에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해묵은 담론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19세기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인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완성한 명저 '인구론'에서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식량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인류가 결국 멸망을 자초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새롭게 맞이할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유럽인들의 낭만적인 꿈을 맬서스는 여지없이 깨버렸습니다.

비관론자로 불리는 맬서스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빈민의 인구 증가를 억제해 식량 생산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전쟁이나 기아, 질병처럼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춰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예방적 억제'라는 두 가지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맬서스는 예방적 억제를 권장했고, 효과적인 피임법이 없었던 당시였으므로 대신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자제하도록 빈민을 계몽하는 방식을 내놨습니다.

맬서스의 주장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영국 정치권은 맬서스의 주장을 교묘히 악용해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생계 대책도 없이 아이만 낳은 어리석고 무능한 빈민층에게 보조금을 주다가는 무능력 없는 인구만 늘 뿐 결국에는 기득권층의 짐만 될 뿐이라며 각종 빈민 구제방안이나 사회 복지 정책들을 모두 무효화시키거나 보류시켰습니다. 나아가 임금 인상 등 인구 증가를 불러 올 수 있는 모든 전향적인 정책은 반대에 부딪혔고 현상 유지가 최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멜서스가 우생학적인 관점에서 의도를 가지고 인구 증가를 경고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옹호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맬서스가 세상을 뜬 지 불과 250년 만에 전 세계 인구는 8배나 급증했지만 그가 예언했던 전지구적인 식량 대란은 없었습니다. 물론 환경과 자원 문제 등 다른 방면에서는 인구 증가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지만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주류 학자들은 기술 혁신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손이 한정된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시장가격을 조정하기 때문에 비관적 전망은 빗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멜서스의 시나리오를 과도한 비관론의 대명사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 역시 너무 성급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국 서섹스대학 발전연구소의 로렌스 하다드 소장 같은 신중론자들은 "중국과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경제국들이 너무 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세계 경제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면서 "이것이 바로 세계의 산림이 줄어들고, 어장이 무너지고, 초원이 사막으로 변하고, 토양이 침식되고, 18개국에서 지하수면이 낮아지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맬서스의 저주스런 예상이 현실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지구인들의 행동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저탄소 경제와 친환경 기술 개발이 구체적인 지향점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주된 책임은 그동안 무절제하게 탄소를 소비하며 부를 축적해온 서방 국가들에게 있습니다. 지구 차원에서 문제를 풀 수 없다면 인류가 옮겨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출생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아마 2025년 쯤엔 80억번째 신생아가 태어날 것이고 2050년엔 90억번째, 그리고 2100년엔 마침내 100억번째 아기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맬서스의 저주'를 풀어야 할 주인공은 이제 곧  '70억분의 1'이 될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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