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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겹살 vs 불고기

댄 퍼잡스키 vs. 호르헤 파르도 '한국에 대한 이해'

며칠 전 주한 우루과이 영사를 만났습니다. 우리나라와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온 분입니다. 사실 이 분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을 그저 '분단국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시아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시작으로, 2010년 16강전 한국-우루과이 경기 이후에는 한국을 아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우루과이에 케이팝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한국 대중문화 확산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고 하네요. 영사는 본인이 한국에 온 지 2년이나 지났어도 한국 가수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데, 한국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우루과이 사람들이 한국어 가사를 줄줄 외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고 말합니다.

요즘 한국은 한류 드라마와 케이팝으로 조금씩 세계 속으로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귀여운 가수들과 신나는 음악의 나라'로 알려지기 이전의 한국은 사실, 전 세계 거의 유일한 '분단국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독재주의 공산국가와 급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자유민주국가의 공존. 이런 사실만으로도 한국은 '한류'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기 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당연히 예술 소재로 반영이 됐고요.

요즘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두 곳을 갔다가 재미있는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똑같이 한국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인데, 그 표현 방식과 의미는 너무나 다른 두 작품입니다.

먼저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댄 퍼잡스키의 작품입니다. 퍼잡스키는 루마니아 출신 작가입니다. 북한에 버금가는 공산주의 폐쇄 국가였던 루마니아는 1989년 12월 22일 시작된 혁명 이후 자유를 찾았습니다. 그런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남달랐는지도 모릅니다.

퍼잡스키는 공산주의 특유의 엘리트 교육 체제 안에서 10살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미술 장르를 섭렵했다고 합니다. 당시 루마니아는 엄격한 폐쇄 사회였기 때문에, 아무리 작가라도 외국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요원했고, 단지 작가의 작품만이 외국 '구경'을 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외국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에 퍼잡스키는 직접 나가야지만 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게 됐는데, 그게 바로 드로잉이었습니다. 퍼잡스키는 전시장의 벽에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는데, 전시 기간이 끝나면 그림 흔적을 아예 지워 버립니다. 작품이 돈에 팔려 다니는 '미술 시장'에 대한 그의 혐오심 때문이라네요. 아예 작품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튼 퍼잡스키는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그 나라의 날씨와 지리, 음식과 환경 등의 정보를 미리 알아보듯이, 해외 전시를 나가기 전부터 그 나라의 신문을 살펴봅니다.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지는 않지만, 몇 달치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다보면, 그 나라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됩니다. 그 다음 그 나라에 들어가 직접 그 나라를 살펴보고, 또 전시 기획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세세한 생각들을 만들어 가는데요, 그렇게 쌓은 이미지를 전시장 벽에 낙서로 표현을 하는 작가입니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영자신문 몇 달치를 받아 봤습니다. 워낙 다이내믹한 한국, 작가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경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휘청거리는 세계 경제에 타격을 받은 경제 상황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었으니까요. 빚더미에 허덕이는 서민들과, 엄청난 빈부 격차로 빚어지는 위화감이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습니다.

허구헌날 싸움질을 하는 정치인들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 살아본 작가로서는, 독재 체제를 벗어나 민주 국가가 된 나라의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가 도대체 어떻게 보였을까요. 퍼잡스키는 점잖게 양복을 빼입고 있던 정치인들이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트랜스포머'가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한국 거리를 지나가면서 본 사람들을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휴대전화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 '아이폰'의 나라, '아이-코리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늦더위가 이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비도 많이 왔었죠. 퍼잡스키가 방한했을 때가 바로 이 때였는데요, 당시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장마패션'이 유행이었습니다. 우비에 장화가 이른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지요. 퍼잡스키의 눈에는 장화가 좀 이상해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낙서도 나왔습니다.

                  

퍼잡스키는 길거리에서도 신기한 걸 발견했습니다. 걸어가다 보면 10미터 정도 마다 등장하는 그 곳. 바로 '파리바게트'였습니다. 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보다 훨씬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비춰졌지요. (MC는 맥도날드, 에펠탑 모양은 파리바게트입니다.^^

                 

 

마지막으로 퍼잡스키가 인상적이라고 느낀 것은 한국의 '음식'입니다. 드럼통 같은 불판에 구워 먹는 삼겹살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고기를 주방에서 요리가 된 뒤에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생고기를 직접 구워 먹습니다. 이런 경험이 외국인인 작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또,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 나오는 반찬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에피타이저-샐러드-메인-디저트, 이런 순서대로 한 번에 한 가지 음식을 먹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죠. (왼쪽이 드럼통 삼겹살 불판, 오른쪽이 반찬 접시들입니다. 그럼 가운데에 끼어있는 그림은 무엇일까요? 바로 금요일 밤 홍대 거리입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끼어들 틈조차 보이지 않는 거리, 요즘은 필수 관광 코스까지 됐다고 하는데, 그만큼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인가 봅니다.)

                

이번에는 '자유분방'한 나라 쿠바 출신 작가 호르헤 파르도의 작품입니다. 파르도는 쿠바 출신이기는 하지만, 미국 LA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다들 잘 아시다시피 LA는 코리아타운이 있을 정도로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지요. 파르도도 LA에 한국인 친구들이 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한국 문화를 접하고 있고요.

파르도의 전시는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장소, 옛 궁궐에서 열리는 전시에 파르도는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보내 왔습니다.

밥상, 찻상 같은 나무 탁자들이 바닥과 벽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탁자들 안에는 파여진 홈마다 반지, 목걸이 같은 휘황찬란한 각종 액세서리가 들어차 있습니다. 여성들이 보면 탐낼만한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옛 왕실 장식품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하네요. 언뜻 보면, 삼국 시대의 장신구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작품 제목은 '불고기'입니다.^^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작품도 있습니다. 둥그런 방 안에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앨범에서 봤을 법한 그런 사진들입니다. 중년 관람객들은 "어, 나도 이런 사진 있는데."라고 말할 정도로 익숙한 사진들입니다. 가족, 친구와 찍은 사진들인데, 족히 2~30년 전 모습으로 보입니다. 파르도가 LA 한인 친구들 집에서 하나씩 가져온 사진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방은 한국의 사랑방 모습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방의 모양은 한국의 음식, 만두 모양으로 빚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죠. 우리나라 만두는 초승달 모양에 가까운데, 파르도의 만두는 통통한 것이 오히려 중국식 만두 같은 느낌입니다. 외국인인 파르도에게 한국은 이런 모습으로 비췄나 봅니다.

                  


                 

퍼잡스키와 파르도. 두 작가 모두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꽤 많은 노력을 했을 듯합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이 사뭇 다르죠. 또, 한국인인 우리가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서로 다릅니다.

우선 퍼잡스키의 낙서 그림을 통해서는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파리바게트가 얼마나 많은지 미처 몰랐고요. 얼굴을 휴대전화에 쳐 박고 다니는지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파르도의 '불고기'는 제목만 '불고기'이지 진짜 '불고기'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한국보다는 일본이나 중국풍의 느낌이라 해야 좀 더 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외국인 작가가 바라본 한국의 느낌은 한중일을 모두 섞어놓은 듯한 '오리엔탈리즘'인가 봅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살다보면, 내가 사는 사회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한 채, 그냥 그게 다 인줄로만 알고 살아가게 되죠. 외국인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건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그 의미는 그리 작지 않아 보입니다. 제 3자의 눈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모습,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 댄 퍼잡스키 <더 뉴스 애프터 더 뉴스(The News After The News)>

- 토탈미술관, ~12월 4일까지

* 호르헤 파르도 <소통의 기술> - 덕수궁미술관, ~12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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