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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로또 한 장에 담긴 우리시대의 '자화상'

[취재파일] 로또 한 장에 담긴 우리시대의 '자화상'

지난주 전국에 로또 열풍이 불었습니다. 1등 당첨금이 이월되면서 '로또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로 로또 판매점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저도 서울시내의 한 유명한 로또 판매점에 취재차 가봤습니다. 길게 늘어서 줄을 처음 본 순간, 속으로 감탄사가 연이어 나왔습니다. 기자로서 그 광경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로또의 사행성이었습니다.

"복권이 선량한 시민들의 사행성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제가 현장에서 본 서민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로또 한 장에 작은 소망을 담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순수한 서민들의 작은 소망들이 보였습니다. 로또를 수십장씩 사며 로또 한방에 모든 걸 걸어보겠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로또를 사는 시민들의 모습을 너무 감성적으로 바라본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로또 한장에 우리들의 자화상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IMF 를 겪으면서 살인적인 구조조정 한파를 겪은 50대. 그나마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해도 언제 40대 부장과 임원에게 자리를 내줘야할 지 모르는 불안감에, 또 자식들 대학보내고 결혼시키기에 허리가 휩니다. 천정부지로 오른 등록금 뒷바리지를 못해 아르바이트에 지친 자식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고, 결혼할 때 도움을 주지 못하면 평생 집 한 채 없이 살 자식들 생각에 머리가 멍해지는 세대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온통 자식 걱정과 앞으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땅이나 좀 사서 농사지으러 내려가고 싶어요."

"퇴직금으로 장사를 했는데, 시원치 않아서 이제 몸도 힘들어 지는데 나중에 은행에 두고 생활비라도 하고 싶어서..."

"자식들 결혼할 때 집이나 한 채 해주면 좋잖아요."

40대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45세면 정년이라는 '사오정'이 보통명사가 된 지금, 그들은 내내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가 가장 많은 세대인 그들은 사교육 광풍의 최대 피해자들입니다. 그들은 로또 한 장에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꿈을 담았습니다.

"1등 되면 아들 있는 미국가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꿈이죠."

점심시간에 직장 근처에서 만난 30대. 열심히 맞벌이 하면서 집 한 채 살 꿈을 키웠지만, 2000년부터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아직도 전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전셋값도 최근 급등해, 전세금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전세금을 또 대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갓 말을 시작하고 걷기 시작한 아이를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그 아이에게 들어갈 사교육비 걱정에 대학등록금까지...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또가 되면 무조건 집부터 장만하고 싶어 합니다.

"빚부터 갚아야죠. 집 한 채 사고..."

책가방을 맨 대학생들도 로또 한 장을 사러 줄을 서 있었습니다. 대학 생활의 낭만도 없이 토익점수와 취직에 매몰된 대학생들. 번듯한 명함 하나 가지는 게 그들에게는 지상최대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태백'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내집 마련의 어려움, 사교육 열풍, 암담한 노후대비에 대한 걱정에 벌써부터 얼굴은 어둡기만 합니다. 그리고 당장 대학등록금으로 진 빚까지...대학생 특유의 활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들은 저마다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이제 자신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힘들다는 데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조그만 로또 한 장에 그렇게 소망을 담나 봅니다.

"딸 시집보내고 사달라는 거 다 해주고 싶어요."

"고생하신 부모님 집 한 채 사드리고, 효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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