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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미회담에서 배울 점들

[취재파일] 북미회담에서 배울 점들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이 고위급 회담을 가졌습니다.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김계관 북한외무성 제1부상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6자 회담 재개 가능성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인 것입니다. 예상대로 구체적인 합의문 같은 성과는 없었지만,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한 것만 해도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미 회담 취재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취재과정이 서투르긴 했는데, 이틀을 꼬박 따라다니다 보니까 몇 가지 특징적인 점이 느껴지더군요.

우선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북한의 회담 전략입니다. 첫날은 일반 회담과 다름없이 미국 대표부에서 오전과 오후 회담, 그리고 만찬까지 이어졌습니다. 만찬을 끝내고 돌아오는 양측 대표단 모두 호텔에서 기다리는 취재진들에게 간단하지만 긍정적인 대화 분위기라는 뉘앙스의 언급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둘째 날은 달랐습니다. 북한 대표부에서 열리기로 한 오전 회의를 위해 출발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취재진들이 새벽부터 호텔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시 반 쯤, 호텔 로비와 차량 출입구를 왔다 갔다 하던 실무자(북한 대표부 참사관)가 경찰에는 호위를, 호텔에는 포토라인 설치를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취재진은 포토라인이 쳐진 9시 반부터, 의미있는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김계관 부상은 회담이 예정된 10시가 넘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북한측은 아무런 설명도 없었는데, 미국 대표부를 통해 두 가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전 회담은 취소되고 북한 대표부에서 오찬을 겸한 회동을 한 뒤 오후 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과, 회담이 끝난 뒤 오후 5시 반에 미국 대표부 내의 브리핑 룸에서 공식 브리핑을 할 테니 사전에 참가 미디어 등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대표부에서 오찬을 한 뒤 오후 회의가 시작됐다고 알려진 뒤, 30분 만에 미국 대표단이 북한 대표부 건물에서 나왔습니다. 곧바로 미국 대표부는 공식 브리핑을 4시로 앞당기고 미국 대표부 내가 아닌 건물 앞에서 약식으로 하겠다고 변경 안내를 해왔습니다. 그리고는 북한측 역시 갑자기 4시에 자신들도 브리핑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차피 합의된 사항이 없으므로 양측 모두 ‘건설적인 회담이었다’는 별다른 알맹이 없는 브리핑이었는데, 다른 것은 북한측이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며 큰 의미를 부여한 반면 미국측은 아직 ‘시간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날 취재진들을 애먹였던 일정 변경 과정의 내막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이 회담의 진행과정과 결과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측은 ‘본국 훈령을 기다린다’거나, 또 ‘훈령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고 했을 것인데, 미국 대표부나 취재진 모두 북한의 일거수일투족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스위스 정부가 확인은 해주지 않았지만, 레만 호가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호텔에서의 숙박과 차량이용 등 북한 대표단의 제네바 체제 비용도 모두 스위스 정부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스위스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해석인데, 결국 북한은 돈 한푼 안 들이고(물론 북한대표부에서 열린 오찬 비용은 들었겠죠) 미국 정부와 스위스 정부, 그리고 취재진들을 요리했던 것입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또 한 가지 특징적이었던 것은 일본 언론의 취재열기입니다. 김정일 북한 북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거취나, 최근 손자 김한솔에 대한 취재 열기 모두 일본 언론의 유별난 관심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늘 그렇다고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직접 보니 대단하더군요.

일본 언론은 일단 취재 관행이 우리와 많이 달랐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물량공세였습니다. 인력과 자본 모두 최대한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숙박은 대표단이 묵는 곳에서 함께 하며 24시간 감시 체제를 확보하고, 오토바이 촬영이 가능한 전문 인력을 확보해 대표단의 동선을 밀착 취재한다는 것입니다.

SBS와 제휴관계에 있는 일본 NTV 취재팀을 만나 물어보니, NTV의 서울지국에서 3명, 파리지국에서 2명, 런던지국 1명, 워싱턴지국 1명 등 모두 7명이 왔고, 위성을 이용한 생방송 준비까지 모두 갖췄다고 하더군요. 대표단 숙소와 북한 대표부, 미국 대표부 마다 따로 전담 마크맨을 정해 거미줄 같은 취재망을 구축했습니다. NHK는 물론이고 아사히TV나 후지TV 모두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언론의 취재망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신문사 5곳에서 한 명씩, 지상파 방송3사와 YTN이 각각 1팀씩이 취재를 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식의 경쟁방식이 있었습니다. 방송사의 경우 각 사가 한 곳씩 담당 구역을 정해 취재를 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이죠. 이런 방식으로 간신히 방어는 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집중력있게 공세적인 취재를 하는 일본 언론사들이 부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의 외교 전략과 일본의 취재 열기 모두 우리가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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