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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휘발유값, 다음주엔 2천 원?

[취재파일] 휘발유값, 다음주엔 2천 원?

이러다 올해 안에 전국의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리터 당 2천 원이 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5일 낮 4시 현재, 전국의 보통휘발유 평균가는 1991.34원. 어젯밤 자정 1990.89원으로 마감됐던 데서 벌써 0.45원이 또 올랐습니다. 석유공사에서 운영하는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www.opinet.co.kr)이 실시간 유가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하루 6번. 오늘 남은 8시간 동안 얼마나 더 오를지 겁날 정도입니다.

전국 평균 기름값은 오늘까지 무려 50일째 연속 상승해왔습니다. 2주 전인 지난 13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워 온 셈입니다. 상승세도 가파릅니다. 유가는 지난달 25일 1952.07원을 기록한 이후 18일만에 18.95원이 올라, 지난 13일 1971.94원을 찍으며 6개월만에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그러나 13일부터 그만큼(18.95원)이 또 오르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11일. 일주일이 단축된 겁니다. 이 기세대로라면 다음주초엔 드디어(?) 보통휘발유 평균가가 2천 원을 넘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기름값이 왜 이렇게까지 오르는 걸까. 최근의 '미친 기름값'을 뜯어보기 위해 먼저 그 구조를 좀 들여다보겠습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주유소에서 소비자들이 최종적으로 계산하게 되는 기름값이 리터 당 2천 원까지 오른다고 할 때, 세전 공급가는 그 절반 정도인 1천 원 수준이 될 겁니다.(세전 50%) 여기에 유류세 등 940원 수준의 세금이 또 붙는 겁니다.(세금 47%) 나머지 60원 정도를 주유소가 챙겨 비용을 충당하고 이익을 냅니다.(3%)

세금과 주유소 마진의 비율이 항상 이 정도라고 봤을 때, 결국 정유사들의 공급가가 국내 소매 기름값을 결정하는 거죠.

그러면 국내 정유 4사는 어떻게 공급가를 결정할까요. 90년대말 유가 자율화 이후, 정유사들은 몇년간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석유제품 가격을 자율 결정해 왔습니다. 그러다 2001년 즈음부터 시장 가격을 더 잘 반영한다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석유제품 가격을 참조해 국내 공급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보통 싱가포르 현물시장 거래가가 2주 정도 지나면 국내 유가에 연동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방금 정유사들이 싱가포르 시장가를 '참조'해 국내 공급가를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기준은 있되, 결국 가격은 원유를 수입해 석유제품으로 가공해 파는 정유사들이 환율과 이윤 변수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싱가포르 석유제품가가 얼마얼마라고 해서 1~2주 후 국내 유가가 이 정도라고 자동 연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유사 결정가격을 구성하는 '원유값+수입비용+제조가+@'와도 다소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국내 석유 수요는 안정돼 있는데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이 출렁이면 그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해묵은 정유사 폭리 논란도 이 지점 언저리에서 반복됩니다.

이렇다 보니,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을 국내 유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를 대체할 유력한 기준이 대두된 상황도 아닙니다.

그럼 편의상 지난 50일 동안 국내 석유제품 소매가(주유소 휘발유 가격)와 그보다 2주 선행하는 50일 동안의 싱가포르 현물시장 휘발유값, 그리고 환율을 비교해 볼까요.

지난 50일 동안 국내 휘발유 소매가는 상승일변도였지만, 싱가포르 현물시장 휘발유값은
120달러 후반대에서 오히려 110달러 후반대~120달러 초반대로 내려앉았습니다. 2~3일 간격으로 등락을 거듭해 일일이 그래프를 그리기도 애매합니다^^;

               

환율요? 8월말 천원 후반대에서 오늘 1,128.50원까지 오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최고가는 9월 22일 1,193원으로, 이를 전후해 역시 등락을 거듭하며 대세 상승⇒ 대세 하강 기조를 보여줍니다. 국내 휘발유 소매가가 50일 동안 계속 상승일변도만 심플하고 시원하게(?) 그리고 있는 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모양새입니다.

네, 정유사들도 할 말은 많습니다. 3%대 이익률이 폭리라고 할 수 있느냐, 공정위와 지식경제부 등이 정유사의 폭리 구조를 파헤치겠다고 지난해부터 몇 달간이나 씨름했지만 결국 공정위는 국내 정유사 이익구조를 폭리 수준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내린 바 있고 정부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지 않았느냐, 이익을 고도화시설 투자 등에 돌려 몇년새 세계적인 수준의 석유제품 생산능력을 갖추고 올해 부진했던 반도체/LCD 등 전자제품군 대신 수출확대를 앞장서 견인해 온 게 정유업계 아니냐 등등... 억울하다고 항변합니다. 이 모두 일리 있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보여드린 것처럼 "요즘 기름값 왜 이렇느냐"는 의문에 정유사들이 자동판매기처럼 내놓는 "환율과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이 계속돼 와 그렇다"는 답은 꼭 들어맞진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특히 올 상반기 정유4사가 (정부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먹기로) 단행했던 '석달간 기름값 100원 인하' 조치로 인해 2분기 영업이익률이 크게 줄어든 바 있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그때 본 이익 감소분을 그대로 다 반영하면서 가격을 책정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적잖습니다.

사실, 정작 그 가격인하 조치 시기에도 사후 정산 방식을 택했던 SK에너지를 제외한 3사의 경우 예고했던 것처럼 기름값을 정말 100원씩 인하하지는 않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2008년 고유가 사태 때처럼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됩니다. 기름 소매가의 절반 가량을 세금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눈치를 보는) 업계 쪽에서도 이런저런 조치가 나왔고 업계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도 계속 입안되고 있지만유가가 잡히지 않는다면, 결국 남은 것은 세금이죠.

특히 주유소들은 요즘, 업계가 하다 못해 지난 5년간 정부가 내야 할 카드 수수료 1조 3천억 원까지 대신 내왔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주유소가 부담하는 카드수수료 3% 가운데 1.5%, 즉 절반 가량은 사실 세금 분에 대한 수수료로 정부 몫이어야 하는데 이 비용까지 주유소들이 자체 부담해 왔다는 겁니다. 석유유통협회 측은 "전세계 어디서도 유류세 때문에 발생하는 석유값 상승분 만큼의 카드 수수료를 업계가 짊어지고 있는 곳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물가불안이 시한폭탄처럼 도사린 올해,(이미 부분적으로 터진 건지도...) 정부 당국이 그렇게 유가를 잡겠다고 나섰는데 오히려 연말이 다가오면서 유가는 고삐가 풀린 것처럼 뛰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발 경제위기로 세계적인 침체가 우려되고 내년에는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그렇습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뛰어넘었다는 암울한 얘기도 들립니다.

사실 진작 체감해 온 물가상승과 경제성장 사이의 격차는 그 숫자 이상이죠. 스태그플레이션의 초입이냐 그렇지 않으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에 대한 불안만큼은 어느 때 못지 않게 짙습니다.

이런 가운데, 업계의 "국제유가가 올라서 그렇다"는 답변도 점점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지고, 당국의 유가잡기 노력이라는 것도 업계를 압박할 뿐 세금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의문도 생깁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최선의 대답을 구하려는 노력이 지금 절실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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