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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겨울철새…반갑지만 걱정이

[취재파일] 겨울철새…반갑지만 걱정이

충남 홍성에서 천수만 방조제를 타고 서산, 태안으로 넘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푸른 바다, 오른쪽으로 드넓은 인공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대건설이 지난1980년 약 8km의 갯벌에 둑을 쌓아 1995년쯤 천수만 방조제를 만들며 생긴 호수이다.

천수만 간척지 A지구에 간월호, B지구에  부남호. 호수 양쪽엔 1만여 ha의 농경지가 만들어졌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을 만큼 광활한 평야지대로 재탄생했다. 바다를 가로막아 생긴 호수와 농경지는 겨울철새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좋은 서식지. 벼농사를 짓는 농경지는 철새들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고 인공 담수호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어서 철새들의 안전을 지켜주기에 손색이 없다.

               

여름 장마가 지나고 가을이 되면 천수만 간척지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들로 황금 물결을 이룬다. 농민들의 가을걷이 손길이 분주해질 무렵, 시베리아 북녘 하늘에서 어김없이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진객은 큰 기러기.수만 마리가 대형을 이뤄 천수만 상공을 비행하며 신고식을 한다. 멸종위기종인 가창오리와 노랑부리저어새도 기러기를 따라 차례차례 들어온다. 10여 년 전부터는 국내에서 멸종된 황새도 단골손님이 됐다.

이렇게 천수만에 찾아오는 겨울 손님은 11월 중순쯤 20여만 마리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제법 쌀쌀한 날씨가 되면 백조로 불리는 고니도 합류하고, 따뜻한 남녘으로 날아가던 흑두루미 가족도 잠시 들러 지친몸을 추스린다. 맹금류인 독수리, 말똥가리도 창공에서 들녁을 쏘아보며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린다.

               

보기드문 희귀 철새들은 훌륭한 구경거리다. 천수만 철새도래지가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철새 구경 행렬이 줄을 이었고, 자치단체에서는 호숫가 언덕에 철새 관찰이 가능한 탐조 시설을 만들어놨다.

탐조 체험은 어린이를 비롯해 청소년들에게 특히 인기다. 교실에서 그림으로만 본 멋진 새들을 망원경을 통해 직접 관찰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게 아니다. 철새 군무를 본 학생들은 대개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겨울 철새들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것은 아니다. 겨울 철새들이 도착하면서 마음이 급하고  손길이 분주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간척지 농민들과 천수만 주변에서 닭을 키우는 양계 농민들이다.

2천 년 무렵 현대건설이 간척지 땅을 일반에게 분양하면서 천수만 평야지대는 대부분 농민들의 소유지로 바뀌었다. 개인당 대략 수만 평씩 분양받아 전문적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문제는 수만 마리로 떼를 이뤄 날아오는 기러기들의 주 먹이가  벼이삭이란 데에 있다.
농민들은 기러기떼가 한번 훑고 지나가면 별로 건질 게 없을만큼 피해가 크다고 한다. 벼포기가 제대로 서 있는 논은 기러기가 잘 앉지 않지만 태풍 때 비바람에 벼가 쓰러진 논은 기러기가 내려앉기 좋은 곳이란다.

               

기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농민들은 이맘 때쯤 벼수확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러기 먹잇감을 걱정하는 것은 자치단체이다. 농민들에게 돈을 주고 볏짚 수거를 못하게 한다. 볏짚에 붙어있는 이삭은 기러기들의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양계 농민들은 겨울철새 소식만 들으면 그야말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4-5년 전부터 부쩍 잦아진 AI공포 때문이다. 철새들의 분변이 AI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철새 길목에있는 닭장들은 외부 침입이 어렵게 망을 설치해 폐쇄해 놓았다. 불안감에 소독도 자주 한다. 한번 고병원성 AI에 걸리면 말 그대로 키우던 닭을 모두 살처분해야 하기에 농민들의 걱정은 클 수 밖에 없다.

               

양계농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지자체와 정부 당국에서 좀더 능동적,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대개 지금까지는 병이 발생한 뒤에 원인을 찾는 역학 조사를 진행한다.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 예방 차원에서 철새 분변 검사를 실시해 바이러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면 어떨까? 1주 단위로 해도 좋겠다.

막연한 불안감에 떠는 농민들의 걱정뿐 아니라 손님 대접을 못받는 철새들의 억울함도 풀어주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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