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된 세계 주요국 침체가 우리나라 수출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를 한참 밑돌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초부터 시작된 이상 기후는 농산물 값을 큰 폭으로 올렸고, 이어 전셋값과 기름값, 또 환율 상승에 따른 추가 물가상승 압력까지,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푸념을 심심찮게 듣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물가상승 압력도 높아지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스태그플레이션 논란이 한창이다. '저성장 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경기 사이클 상 경기가 다소 하강하는 사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수치를 보자. 주요 10개 투자은행이 전망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평균 3.7%로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4.3%에 비해 0.6% 포인트가 낮다. 이런 차이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큰 편으로 어렵다 어렵다 해도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우리의 이웃 국가들은 모두 성장률이 물가상승률은 상회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학자들은 이미 우리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패턴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2009년 2분기엔 아예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차이가 무려 4.9% 포인트 차이가 났었다. 그 때보다 갭은 작지만 유럽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어렵고, 중국의 성장률 둔화에 미국의 저성장 지속 등 한국을 둘러싼 환경들이 앞으로 저성장 국면으로 더 깊이 진입하게 되기 때문에, 이미 문제는 시작됐고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현재 내년 성장률도 3%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인데, 한국 경제가 1971년 이후 2년 연속 4% 미만 성장률을 보인 적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과 2009년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그 때와 비슷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라는 해석이다.
반면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보기는 시기상조라는 전문가들은 성장률이 0이나 마이너스도 아니고, 물가도 7~8%로 아주 가파르게 높은 쪽으로 치솟은 게 아니기 때문에 경기 사이클 상 둔화과정에서 기후 등의 원인 때문에 물가가 일시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고 해석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준하는 상황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되겠지만 물가가 고점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고 해외 원자재가격도 하락 내지 안정되고 있어서, 즉 여러 원인으로 각각의 경제지표가 안 좋아진 상황이니 '스태그플레이션'이라 정의하긴 애매하다는 분석이다. 시점을 한정해서 지금의 지표, 숫자만 보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보이지만 현 상황이 성장률이 줄어들면 인플레 정도도 잦아드는 것이지 물가가 통제못할 정도로 치솟는 게 아니라는 이유다.
사실 '물가상승률이 몇 퍼센트, 성장은 몇 퍼센트'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어떤 공식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논란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논의가 중요한 것은 현 상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정부 정책도 달라지고 시장이 경제상황을 인식, 대응하는 방법도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에도 뒤지는 경제성장률, 이런 역전 현상은 갖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개인의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내수는 더 부진해지고, 외부 요인이 불안해서 수출이 줄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실종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기업 실적 둔화는 고용 감소로 이어지고 개인들로서는 후생, 복지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 상황이 어려운 것은 해법이 간명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장률을 올리려 경기부양책을 쓰기 위해 금리를 내려 돈을 풀면 물가는 더 자극되고, 반대로 물가 잡기 위해 긴축하면 경기 둔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9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빚 문제는 전반적인 가계 재정건전성을 약화시키고 있어서 앞으로 더 빚을 내기 어려운 가계의 소비 여력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란 문제도 있다.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은 성장 방식이 외부 의존도를 높였지만, 그렇다고 내수를 급격히 강화하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스태그플레이션이냐 아니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것은 현 상황이 '위기'이고 이 상황이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 과거 대책을 재탕삼탕하는 안일한 접근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판을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떤 방법이 있느냐?"는 문제는 글로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라는 것, 고민이 클 것이라는 걸 공감하는 바이다. 구체적 대안 없이 촉구만 하는 것 같아 다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정부가 하는 일, 학자들이 고민해야 할 일, 기업이 당면한 과제가 바로 그런 것들임을 인식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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