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이라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중국고섬이 상장 폐지 위기에 놓였다. 상장 후 불과 9개월만이다.
지난해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관한 감사보고서에서 '의견 거절'을 받았다. 중국 고섬의 회계감사인 언스트앤영은 "중국 고섬 은행 잔고에 관한 회계기록과 은행으로부터 얻은 정보사이에 불일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별감사인 선임 후 은행 현금 등에 대한 재무제표를 조정하니 원화로 약 1800억 원의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회계법인의 '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요건인만큼 한국거래소는 조만간 국내 감사인의 감사보고서가 제출된 후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국내 감사보고서도 의견 거절로 나오고 중국고섬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곧바로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간다.
중국고섬은 중국 자회사를 둔 홍콩 지주회사로 올해 초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그러다가 회계 불일치로 지난 3월 싱가포르 증시와 국내 증시에서 돌연 거래가 정지됐다. 이후에도 주주총회와 감사보고서 제출을 수 차례 연기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여왔다.
중국고섬에 투자한 국내 소액주주들은 부실한 상장 절차 등을 이유로 거래소와 상장주관사 대우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사태 누가 책임져야 하나?
투자자들은 지난 3월 매매정지 때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계 부정으로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전날 매매정지 신청이 이뤄진 주식이었는데도 다음날 코스피 시장에선 1시간 남짓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 때문에 이런 사연을 모르고 중국고섬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보고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은 매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이 갑자기 매매 정지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도 하룻새 24%가 폭락하며 매매정지 신청이 된 것을 거래소가 알지 못한 데 대해서도 거래소는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래소는 중국고섬 대리인인 법무법인이 매매정지 신청이 되면 거래소에 즉시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어겼다고 탓을 돌리고 있다.
대우증권의 부실 상장 실사도 논란거리다. 외국기업임에도 반년만에 실사 절차가 완료된 부분이 석연찮다는 것. 국내 기업 상장 준비에도 6개월 이상 소요되고, 다른 중국계 기업들은 모두 1년이 훨씬 넘게 걸렸는데 지나치게 급행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우증권 측은 중국고섬의 원주가 싱가포르에 이미 상장됐기 때문에 외형적 요건이 갖춰져 있어서 빨리 끝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중국 현지에서 중국고섬 기업설명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회계부정 사태가 터졌는데, 행사에 참가한 대우증권 실무진은 이에 대해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경영진과 의사소통이 과연 정상적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스런 대목이다.
대우증권측은 회계법인 감사보고서 근간해서 일을 하는 건데 회계법인이 작정하고 부정을 숨겼는데 우리라고 어쩌겠느냐며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개인 투자자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대우증권 역시 중국고섬 주식 800만 주를 보유하고 있고, 상반기에만 이미 235억 원의 손실을 반영했다.
기업 실사를 담당했던 회계법인 언스트앤영, 한영회계법인도 자신들은 불가항력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올초 부산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회계장부 조작 사건이 났을 때 이를 담당한 회계법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실 실사를 했고, 그들의 직무유기사 더 큰 피해를 가져왔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회계부정을 가려내지 못한 회계법인은 향후 몇 년 동안 일을 맡지 못하도록 규정이 개정됐던 것처럼 중국고섬의 담당 회계법인들도 큰소리 낼 수 없는 처지다.
투자자 보호를 근본 목적으로 하는 거래소도 책임의 한복판에 있다. 엄격하게 상장심사를 해야할 거래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거래소는 중국고섬의 상장폐지를 검토하면서, 해외기업 상장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거래소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이렇게 해외기업 상장 요건을 강화하게 되면 그동안 역점적으로 추진해 온 해외기업 국내증시 유치작업에 악영향을 미칠까 하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도쿄 거래소의 예를 많이 들고 있다.
도쿄거래소의 경우 1980년대 외국기업 상장 건수가 120개에 달했는데 1990년대 40개, 2010년말 12개로 큰 폭으로 줄었다. 외국사 유치보다 자국투자자 보호에 관심을 둬 상장절차를 개정하다보니 외국기업 입장에선 상장 비용이 그만큼 커졌고,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에 빠진 상황까지 닥치면서 도쿄거래소의 자본조달 순기능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증시가 도쿄거래소의 선례를 밟지 않으려면 무작정 해외기업 상장 요건을 강화해서는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수도 있다는 게 거래소 측의 주장이다.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역할을 해줘야 할 각 단계별 주체들, 이들의 허술함의 합작품이 현재 중국고섬 사태를 낳았다. 억울한 것은 금전적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이다. 곳곳에서 "당국은 뭐했나"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개월 상장에 7개월 거래정지,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한 피해자의 글은 얼마나 이 사태가 투자자 입장에서 황당한지 여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실한 기업을 제대로 실사하지 않고 수수료 챙기기에만 몰두한 대우증권,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래소 탓에 피해가 고스란히 개인 주주들에게 돌아오게 됐다며 죗값을 치르게 해달하는 요구다.
해외기업 국내 증시 유치, 그럴듯해 보인다. 의미도 있을 것이다. 증시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목적에 부합하게 실적을 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회계장부 조작 등 부정에 투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하는데, 외국 기업의 경우는 더 검증하기 어렵다. 결국은 주관사, 회계법인, 거래소의 자료를 믿고 투자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니 투자자 입장에선 허탈할 수 밖에 없다.
중국고섬 사태 때문에 상태가 괜찮은 우리나라에 상장된 다른 해외기업들도 '차이나 디스카운트' 를 겪고 있다. 결국 이번 기회에 해외기업 상장 요건을 강화하고 더 까다롭게 심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상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이 외국기업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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