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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막 오른 곽노현 재판···재판부의 예단?

[취재파일] 막 오른 곽노현 재판···재판부의 예단?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판에서 기이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재판장이 법정에서 빔프로젝터를 켜서 공직선거법 조문을 해설한 세 종의 국내 교과서와 우리와 법제가 유사한 일본 교과서, 심지어는 일제시대 일본 법원 판결문까지 보여주며 프리젠테이션을 한 겁니다.

재판장이 든 6가지 사례 모두, 이번 재판에서 문제가 된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는 '선거 전에 (후보자 사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것을 약속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선거 직전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을 곽노현 교육감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곽 교육감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재판부가 밝힌 겁니다.

법관들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피고인에게 자신이 예단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재판 첫 날에 사전 약속 여부는 관계가 없다고 밝히다니, 재판부는 이 점을 무시하기로 한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 검찰과 피고인 양 측 모두에게, 쟁점과 상관없는 주장에 너무 많은 힘을 뺄 필요는 없다고 미리 '가지치기'를 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 약속 말고도 다퉈야 할 부분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까요. 물론, '사전 약속'에 대한 다른 해석이 있다면 주장할 것을 변호인 측에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에도 봤지만, 공직선거법의 구조는 복잡하지만 정작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빈 곳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곽노현 교육감 재판은 지리한 법해석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점이 재판장의 프리젠테이션으로 분명해진 셈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부분에 주목해서 재판을 지켜봐야 할 것인지, 사실관계와 법리로 나눠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제 재판에서 검찰,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 곽노현 교육감,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의 진술을 종합해볼 때 다툼이 없는 사실은 이 정도입니다.

"지난해 5월 18일과 19일, 곽노현-박명기 캠프의 실무진들이 만나 후보단일화를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박명기 캠프의 선거비용 보전에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박명기 후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일 저녁에 후보단일화 발표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박명기 교수는 선거가 끝난 뒤 곽노현 교육감에게 선거비용 이야기를 전했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강경선 교수가 나서, 당시 논의 내용을 곽노현 교육감에게 전합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2억 원을 마련해, 강경선 교수를 통해 박명기 후보의 동생에게, 지방선거 종료 6개월 이후인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6차례에 걸쳐 나눠 전달합니다."

사전에 돈을 지급하기로 약속이 있었는지, 당초 합의한 액수는 얼마인지(7억 원, 2억 원, 10억 원의 세 가지 설이 있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선거 전에 보고받았는지와 같은 쟁점들은 모두 이 사실관계의 영역에 속합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금까지 확정된 이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문제가 된 공직선거법 조항은 이렇습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말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필요없는 말을 추려내면, 이 조항은 "후보자를 사퇴하는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자에게/ 금전, 물품 등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금전을 제공했다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집중해야 할 부분은 그 돈이 얼마였든지간에 '후보자 사퇴의 대가'였냐는 겁니다.

다시 법정 진술로 돌아갑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선의로 2억 원을 줬다'고 말합니다. 후보 사퇴의 대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긴급 부조'였다고도 합니다. 강경선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박명기 교수도, 진보진영을 분열시킨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후보에서 사퇴했을 뿐, 돈을 받기로 하고 물러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진술을 번복한 것일까요. 박 교수 측 변호인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있다고 말합니다. '후보 사퇴의 대가를 목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판부도 천명한 이상, 앞으로 법정에서 일어날 일은 대부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려면 '2억 원이 선의'라는 주장을 깨뜨려야 하고, 변호인 측은 이를 방어해야 합니다. 후보를 사퇴하고, 돈을 받은(단순히 시간 흐름상의 서술일 뿐입니다) 박명기 교수의 입장이 애매해서 검찰의 입증은 더욱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공소시효 문제도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패배한 측에서 지루한 소송전으로 승리한 진영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공소시효를 6개월로 정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돈이 건너간 지난 2월은 선거 종료 6개월 이후입니다. 변호인 측은 만에 하나 대가성 있는 돈이라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돈이 건너간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돈이 건네진 4월에 6개월을 더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법조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자에 따르면 후보 매수가 실제로 일어나도 선거 종료 6개월 이후에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모순을 낳고, 후자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무한정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6개월로 줄인 법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모순을 낳습니다. 어느 쪽을 따를지는 재판부의 몫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은 법정에서 "꼬리 자르기처럼 보이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지만,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박명기 교수는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법리논쟁에 파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검찰은 '선의로 준 2억 원'도 후보 사퇴의 대가라고 주장할 것이며, 이 주장이 말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법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진검승부의 때가 다가온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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