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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731부대 극비문서는 발견됐지만…

[취재파일] 731부대 극비문서는 발견됐지만…

일본 731부대가 세균전 만행을 벌였음을 입증하는 극비문서가 발견됐습니다. '731부대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이라는 일본 시민단체의 회원이 일본 교토의 국립 국회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자료를 찾아내 폭로한 것입니다. 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731부대원이었고 그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731부대 세균전 입증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문서를 찾아낸 나스 시게오라는 일본 시민 단체 회원을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문서 사본 촬영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인데도 기꺼이 나와 취재에 응해 줘서 감사했습니다. 오랫동안 731부대에 대한 자료조사와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이번 자료 이외에도 제가 잘 몰랐던 731부대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가네코 준이치'라는 731부대 근무 경력의 군의관이 지난 1944년에 도쿄대학에 박사논문으로 신청했던 7편의 논문입니다. 말이 논문이지, '극비'라는 도장이 여기 저기 찍힌 군사 극비 보고서입니다. 가네코 역시 패전 후 731부대의 연구 결과를 모두 미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면책된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보고서에는 세균 무기로 쓰인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살포한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벼룩의 마리 수까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모두 6차례의 세균 공격을 펼쳐 2만 5천 946명이 희생됐다고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자료를 보며 거슬렸던 것은 가네코가 썼던 표현들인데, 살포한 날짜에 '공격 날짜', 살포한 지역을 '공격 목표', 그리고 희생된 인명수란에 '공격 효과'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들의 숫자가, 731부대원들에게는 자신들이 개발한 세균무기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수치로밖에 안 보였구나 싶었습니다.



살포방법은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살포와 지상 살포가 주로 쓰였는데, 지상 살포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지상 살포는 벼룩을 넣은 허름한 넝마 같은 것을 인구 밀집 지역에 놓아두는 것인데, 살상 효과가 벼룩 1kg으로 환산하면 최고 24만3600명에 달한다고 가네코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살포는 벼룩의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 1kg에 천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공격 효과 비교 환산치' 표에 적혀 있었습니다. 마치 실험실의 세균 숫자를 취급하는 것 같은 표현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았습니다.

중국에서는 731부대가 세균전을 벌여 30여만 명의 무고한 양민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는 731부대의 세균전 희생자에 중국인만이 아니라 우리 희생자도 다수 포함됐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그 근거는 이번 문서에서 1차, 2차로 살포됐던 지역이 중국 지린성 눙안 북쪽 지역인데, 이곳이 당시 만주의 한국인 거주 지역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극비 보고서에는 당시 3백 명이 731부대의 세균전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가 다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당시 다른 통계 자료를 보면 페스트 벼룩이 뿌려졌던 1940년 이 지역의 페스트 발병률이 예년보다 7배나 높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이국땅 만주에서 이유도 모른 채 페스트에 걸려 고통스럽게 숨져갔을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번 극비문서 공개로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731부대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지만, 세균전이나 인체를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 실험은 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미국과 중국, 구  소련에서 세균전과 인체실험을 입증하는 각종 자료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입증하는 증거가 아니다"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난 2002년 731부대 세균전 중국인 피해자 180명이  일본 법원에 낸 소송에서 "세균전으로 만 명이 넘는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사실은 인정된다"라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731부대원이 직접 작성하고 구체적인 기술이 포함돼 근거가 너무 명백한 이번 보고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문서를 찾아낸 나스 시게오 씨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러나 그는 딱 잘라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존 입장과 마찬가지로 '증거가 안 된다며 무시하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내다 봤습니다. 그동안 731부대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게 부족했던 것은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의지'였기 때문에, 설사 731부대 당사자가 직접 증언을 하더라도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도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비밀 문서가 공개된 지 하루가 지났습니다. 나스 시게오 씨의 예상대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아직 없습니다. 나름 내부적으로 극비문서의 내용에 당혹해하며 입장을 정리하는 중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냥 뭉개버리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너무나 명백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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