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당신은 얼굴이 부끄럽나요?

-김민경의 '위장된 자아' & 사와다 토모코 '학창시절'

며칠 전 한 술자리에 '목제주령구'가 등장했습니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주사위입니다. 요즘 주사위는 6면체에, 각 면에는 점이 1부터 6개까지 찍혀 있죠. 신라시대 주사위는 무려 14면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각 면에는 숫자가 아닌 글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4자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바로 술자리 벌칙입니다. 술을 마시다가 흥이 돌면 이 주사위를 굴려 거기에 나온 벌칙을 하나씩 보여주는 것이지요. 벌칙 내용도 참 기발합니다. '연거푸 술 석 잔 마시기', '옆에 있는 사람과 팔 꼬아서 술 마시기'(일종의 러브샷이겠죠.^^) 같이 요즘 술자리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벌칙도 있고, '달을 쳐다보며 시조 한 수 읊기' 같이 낭만적인 벌칙도 있습니다. 벌칙 가운데에는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것 보여주기'란 것도 있었는데요, 이 벌칙 내용을 듣자마자 그 술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럼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데......."라며 깔깔 웃었습니다.

얼굴은 신체 부위 가운데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입니다. 게다가 얼굴이 곧 '나 자신'이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범죄자도 '미인'이면 '팬클럽'이 생기는 요즘 같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에는 얼굴이 (농반진반) 가장 부끄러운 곳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도 속을 다 드러내놓고 보여줄 수 없는 이상, 1차적으로는 얼굴이 나를 대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거울을 쳐다보고, 남들이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화장품과 머리 모양을 이리저리 바꿔보며 좀 더 나은 모습을 찾으려고 애쓰고, 심지어는 각종 시술과 수술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각종 매체에서는 경쟁적으로 '못난이 대변신 프로젝트'를 보여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변신'을 촉구하기도 하고요.

이제 갓 서른, 젊은 여성작가 김민경은 이런 모든 노력이 '위장술'이라고 얘기합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만 만나본 김 작가도 사실 굉장한 미인이었습니다.^^) 김 작가는 요즘 또래들이 이런 외향적인 것을 내세우다 보니, 정작 진정한 '자신'은 숨겨놓고 있는 모습을 꼬집습니다. 이런 생각은 김 작가의 '위장된 자아(camouflaged selves)'에 나타납니다.

화려한 색깔의 가발과 안경, 옷차림은 각각 다 다릅니다. 하지만, 무채색의 얼굴, 초점 없는 눈빛은 다 똑같습니다. 각자 '개성'을 내세우며 자신을 치장하지만, 결국엔 '보기 좋은 것'에만 집착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입니다.



교복 안에 갇혀 있던 10대들이 자신의 개성을 맘껏 뽐낼 수 있는 그 날, 바로 졸업식입니다. 짧은 머리, 똑같은 교복........ 자유롭게 벗어 던지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나서는 그 첫날입니다. 일본 작가 사와다 토모코는 그날 풍경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담임선생님부터 40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얼굴이...... 다 똑같습니다. 바로 작가의 얼굴입니다. 작가는 계속해서 '분장'한 채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얼굴을 누군가의 졸업사진 위에 오려 붙이니, '한 학급의 졸업사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칠듯한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토모코 작가도 김 작가와 같은 생각이었을까요. 옷을 바꿔 입을 필요도 없이, 얼굴과 머리만 치장했을 뿐인데, 같은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굴은 타고 나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삶에 따라 얼굴도 달라지면서 얼굴은 곧 '삶의 흔적'이 되기도 합니다. 링컨도 이런 말을 남겼다죠.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 남들과 달라 보이고, 더 낫게 보이려는 노력보다, 내면까지 보일듯한얼굴을 만드는 데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민경 작가, 사와다 토모코 작가의 작품들... 웃음이 나오는 재미있는 작품들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생각도 많이 하게 하는 작품들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