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낮 12시께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그렸던 철원군의 평화로운 삼부연 폭포를 지나자 1.4㎞가량 떨어진 속칭 `가클봉'에서 하얀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어서 하늘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포성이 귓가를 때렸다.
산속에 포근하게 안긴 형태로 일견 평화로와 보이는 강원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3리 용화동 마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포성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57년째.
6ㆍ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부터 철원이 수복되면서 주민이 입주한 뒤 마을 입구의 포사격장 피탄지는 현재의 마을 뒷산으로 이전했지만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계속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주민은 그동안 포탄 파편이 날아들어 지붕의 슬레이트가 깨지고 천장이 뚫리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특히 지난 1967년 7월에는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갔던 주민 2명이 포탄 파편에 맞아 숨지는 등 그동안 4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부상하는 인명사고도 발생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탄원했다.
주민 인장환(67) 씨는 "19살 때인 1964년 7월 산에 올랐다가 `쿵'하는 소리를 들은 뒤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팔이 절단돼 너덜거리고 복부의 장기 일부가 밖으로 나와 움직일 수 없었다"고 끔찍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그는 현재까지 밥조차 스스로 먹기 어려워 아내가 수저로 떠먹여 줘야 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주민은 포탄 소리에 놀란 관광객이 돌아가는 등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남택선(63) 씨는 "포사격을 하면 굉음에 가슴이 떨릴 정도여서 어린 손녀는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어쩔줄 모른다"며 "포사격 소리를 듣고 민박을 왔던 관광객이 놀라서 짐을 싸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이날 사격장 이전을 국가에 요구하기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마을회관 옥상에서 자체적으로 소음 측정을 시도했다.
군 당국이 K9 자주포를 쏜 뒤 주민들이 측정을 시작하자 40~50데시벨 수준이던 수치는 갑자기 66~74데시벨로 올라갔다.
하지만 주민들은 마을에서 무려 22㎞ 떨어진 경기도의 한 사격장에서 쏜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는 일상 생활에 불편을 주는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포성이 심한 날짜를 잡아 다시 측정할 계획이다.
포탄의 종류나 거리, 날씨 등에 따라 소음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광춘(60) 신철원3리 이장은 "철원과 경기 북부지역의 여러 군부대 사격장에서 이 곳을 향해 집중사격을 실시하다보니 소음과 진동으로 집에 균열이 생기는 등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며 "마을의 미래를 위해서는 사격장이 이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사격을 실시하는 날이면 안내방송과 함께 사격장 주변에 병력을 배치,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조치를 취해 최근에는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새로운 부지를 마련해 피탄지를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피탄지 주변을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군 당국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피탄지를 이전하려도 해도 이전할 수 있는 곳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철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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