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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청용의 길고 외로운 재활

[취재파일] 이청용의 길고 외로운 재활

지난 7월31일 새벽 영국으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볼튼의 이청용이 5부리그팀인 뉴포트카운티와 연습 경기에서 상대 팀 미드필더 톰 밀러로부터 강한 태클을 당해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개막을 앞둔 볼튼 구단은 비상이 걸렸고, 일주일 뒤 한일전 평가전과 9월초부터 월드컵 3차 예선에 돌입하는 우리 대표팀에게도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곧바로 수술대에 오른 이청용의 완치 예상 기간은 무려 9개월이었습니다. 사실상 한 시즌을 접을 수도 있을 만큼 심각했습니다.

뉴포트카운티 구단이 공식 사과를 했고 태클을 했던 톰 밀러도 여러 채널로 미안함을 나타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 진 뒤였고 이청용은 재활이라는 길고 험난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후 이청용은 외부와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대표팀 해외파 선수 가운데 가장 친언론적인 선수였지만 언론의 모든 취재를 거절했습니다. 대선배인 박지성이 영국에서 병문안 하겠다는 소식에도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상이라는 예기치 않았던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당연히 사고 순간을 이야기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다시 되새겨야 하기 때문이었겠죠,, 부상 후 수술을 마치고 나서 이청용은 한동안 당시의 악몽의 순간 순간 떠올라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괴로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축구 뿐만 아니라 스포츠 선수들에게 부상은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피해가기 힘든 부분입니다. 체력이나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찾아오기도 하지만 지독히 운도 없이 예상치 못하게 큰 고통과 함께 다치기도 하는데 이청용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에 좌절감과 실망감이 더욱 커집니다.

그래서 장기간에 걸친 부상 재활은 물리적인 치료보다는 심리적인 의지가 더 중요합니다. 마치 마라톤처럼 혼자만의 고독한 과정 속에서 희망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버티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치는 순간의 악몽을 하루 빨리 머리 속에서 기억 속에서 지워야 하는데 이 과정도 정말 어렵습니다. 타석에서 머리에 공을 맞은 야구 선수가 다시 타석에 서면 당시의 고통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리바운드를 잡고 내려오다 발목을 다친 농구 선수는 리바운드를 뛸 때마다 위축되기 마련이겠죠. 이청용의 경우는 한 경기에서도 수없이 이뤄지는 태클에 대한 공포를 어쩌면 평생 기억하고 축구를 하겠죠.

          



이청용은 아마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올 때까지 재활 기간 중에 가급적이면 축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 때의 공포스러운 기억을 하루 빨리 지우기 위해서입니다.

이청용은 지난 9월 중순 입국해 축구대표팀 주치의와 함께 4주간 재활 치료를 받고 목발없이 걸어서 다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국내에서도 조광래 감독과 선배 이영표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뼈도 거의 붙었고 근력이 많이 향상돼 가볍게 공을 찰 정도로 상태가 빠르게 호전됐지만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출국하는 그 날은 바로 우리 대표팀의 월드컵 3차예선 아랍에미리트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비운을 느끼지 않기 위해 너무나 보고 싶겠지만 아예 경기도 보지 않고 그날로 출국 일정을 잡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을 취재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이청용이 동점골을 넣고도 우리가 2대1로 져 8강 진출의 꿈을 접었을 때, 경기 직후 대표팀 라커룸 옆 SBS 특별 스튜디오에서 이청용과 박지성의 인터뷰를 요청했었는데 대표팀 언론담당관으로부터 이청용은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인터뷰가 싫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탈진해서 의자에 앉을 힘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경기장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적인 축구 선수입니다. 아마도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5부리그 팀과 연습경기에서도 이청용은 모든 열정을 다해서 뛰었을 겁니다. 그리고 불운하게도 부상을 당했을 것이고요. 

이청용이 빠진 볼튼은 10월초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하위에 쳐져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태극전사들의 활약상도 다른 시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우리 대표팀도 이청용이 붙박이로 뛰던 오른쪽 측면 공격수 자리는 경기마다 선수가 바뀝니다. 그만큼 이청용은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순도 100% 정말 필수적인 선수입니다.

당초보다 재활 속도가 빨라 대표팀 주치의는 내년 2월쯤이면 이청용이 그라운드에 돌아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넉달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강한 열정을 지닌 이청용이니만큼 강한 의지로 부상을 이겨낼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다이나믹하게 측면을 돌파해 중앙 공격수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블루 드래곤의 경기 모습을 하루빨리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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