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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 '화시촌 vs. 원저우'

[취재파일]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  '화시촌 vs. 원저우'

마오쩌뚱 사후 덩샤오핑이 중국이 개혁, 개방을 선언하고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통한 경제 발전을 추구해 온 지 3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워 연 평균 두 자리 수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중국의 부활을 이끌었습니다.

이제 중국은 아시아의 환자라는 불명예를 씻어 버리고 세계 최대의 무역국이자 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국의 자리를 모두 꿰차고 명실 공히 G2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으니, 지난 30년간의 개혁, 개방 역사는 실로 중국에게 상전벽해를 보여줬습니다.

치열한 공산혁명과 엄혹한 문화혁명 시기 동안 억눌려 잠재되어 있던 중국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상인 기질은 이념을 초월한 실시구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다시금 꽃을 피웠습니다.

개혁, 개방의 1번지가 됐던 남동 연안 도시들이 그 과실을 맘껏 즐기며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촌’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른바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실험의 대표적인 상징 도시가 바로 화시촌과 원저우입니다.

자! 이제 두 부촌의 비슷한 듯 다른 엇갈린 운명을 함께 살펴 보시겠습니다.

양쯔강 줄기를 따라 상하이 서북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달려가면 현대판 무릉도원이자 천하제일 촌으로 불리는 장쑤성 장인시 화시(華西)촌이 나타납니다.

               



인구 5만 명의 화시촌 설립 50주년에 맞춰 지난 주말, 높이 328m, 지상 72층짜리 룽시(龍希) 국제호텔이 문을 열었습니다.

세계에서 15번째로 높은 이 5성급 호텔은 공중 수영장과 쇼핑몰, 회전식 식당 등 호화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호텔에 설치된 1톤짜리 '황금 소'가 축하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동안 화시촌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성공을 상징하는 선전 마을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중국 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관영매체는 물론이거니와 외신기자들까지 대거 초청해 화시촌 성공 스토리를 전 세계에 알리도록 애를 써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촌 마을인데도 유럽식 별장 분위기의 가옥들이 즐비하고 집집마다 고급 중형차들이 서 있습니다.

주민들의 연간 소득은 중국 평균의 10배가 넘는 8만5천 위안, 우리 돈으로 1천6백만 원이나 되는데, 왠만한 도시 주민보다 높습니다.

집도 공짜, 교육과 의료, 양로도 무상으로 제공받습니다. 한마디로 공산 혁명 이후 지금껏 중국이 꿈꿔 온 미래 농촌의 모습입니다.

               




화시촌이 이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개혁 개방의 기점인 1978년 마을 주민 1천여 명이 전 재산을 한데 모아 마을 공동 기업(화시그룹)을 만들어 공업화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화시 그룹은 이제 60여 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원을 훌쩍 넘기는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습니다.

회사는 마을의 공동 소유이고 주민들은 회사의 주주이자 근로자로 일하면서 기여도와 능력에 맞춰 배당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 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된 기가 막힌 절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화시촌의 번영을 이끌었던 팔순의 마을 서기(촌장)도 "인민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모두 필요하다"면서 덩샤오핑이 말했던 '흑묘백묘론'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켜줬습니다.

               



다음으로 절강성의 원저우(溫州)로 가보시겠습니다.

지명에서도 짐작하듯 온화하고 살기 좋은 곳인데 예로부터 원저우 사람들은 이재에 밝아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려왔습니다.

원저우 사람 10명이 있으면 아홉 명은 사장이고 나머지 한 명은 사장이 되려고 사업 준비 중인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 전체에 창업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충만한 도시입니다.

역시 원저우인들은 개혁개방 이후 뛰어난 상술을 발휘해 막대한 부를 쌓으며 ‘자본주의 중국’의 첨병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도시 원저우의 민심이 요즘 흉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 7월, 40명이 숨지고 190여 명이 다쳤던 고속철 추돌 참사 사고 현장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잘 나가던 원저우의 간판 기업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망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빚을 제 때 갚지 못해 야반 도주하는 기업인들이 속출하면서 "다음은 누구 차례냐?"는 게 안부 인사처럼 됐습니다.

은행 빚과 사채를 끌어다 기업의 몸집을 키운 원저우 상인들이 전통적인 제조업과 유통업 대신 쉽게 돈을 벌어 보겠다며 두바이 부동산과 금융상품에 묻지마 투자를 했던 게 패착이었습니다.

때 마침 터진 리먼 사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투자해 둔 금융상품들이 도미노식으로 부실화 되면서 원저우 상인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겁니다.

금융권이 돈 줄을 죄면서 이 지역 기업들 가운데 30%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어, 하반기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주 국경절 연휴 기간 동안 이례적으로 원저우를 직접 찾아 민심을 다독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원저우의 기업의 59.7% 개인의 89%가 이용하는 사채시장의 대출 규모가 우리 돈으로 184조 원이나 된다고 하는데, 사채를 끌어다 쓴 상당수 기업들이 파산한 점을 감안하면 사채 대출의 10~15%가 상환불능 상태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저우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전역의 중소기업들과 지역 사채 시장, 나아가 여기에 물려 있는 중앙금융권까지 연쇄 부실화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원저우 상인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금융에 대한 맹신으로 신 자유주의의 함정에 빠져 버린 시스템의 실패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미국을 위시한 서구 자본주의 진영의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해 그들의 오류와 실패를 지적하며 펴고 있는 논리와도 맥을 함께 합니다.

작금의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 탓이라는 지적입니다.

개혁 개방 초기에는 아주 흡사해 보였던 화시촌의 여전한 성공과 원저우의 갑작스런 몰락이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중국식 자본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신 자유주의보다 우월함을 웅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선전 마을 '화시촌'에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베버리힐스 못지 않은 고급 주택은 1천 명 남짓한 화시그룹 원년 멤버들만의 몫입니다. 나머지 대다수 외지 출신 근로자들은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도 여느 오지 시골 못지않은 낙후된 풍경이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아킬레스건인 빈부격차가 화시촌에서도 엄혹한 현실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시 찾아 온 경제 위기!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경제 대국 중국은 오늘도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도 흰 고양이도 여전히 탐욕스러운 눈을 번뜩이며 열심히 쥐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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