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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염소보다 못한 소녀들의 삶에 희망을...

염소 한 마리의 '희망'

영화 '도가니'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애인 관련법, 성범죄 관련법까지 송두리째 바뀌고 있는 걸 보면,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열 보도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도가니'를 보면서 가장 분노했을 때는 아무래도, 교장선생님이 어린 여학생을 강제로 추행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순간, 피해자는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어찌 그렇게 연약하고 예쁜 아이들을 욕보일 수가 있을까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 그 장면에서 부들부들 치가 떨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는 이토록 끔찍한 일이 일상인 곳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면, 하루를 꼬박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곳, 바로 에티오피아입니다. 우리나라 남북한 다 합친 것보다 국토 면적은 무려 5배나 더 넓고, 인구도 8천만 명이나 되는 '큰' 나라이지만, 지구촌 최빈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구의 60% 정도의 하루 수입이 1달러, 우리 돈으로 1,000원도 채 되지 않으니까요.

생계를 꾸리기 빠듯하다보니, 에티오피아 아버지들은 딸을 사고팝니다. 딸을 팔아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뭐라도 해보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서 딸은 곧, 집안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아선호사상'이 아니라, '여아선호사상'이 팽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딸을 어디에 파는 것일까요? 바로 남자에게 신붓감으로 팔아 버립니다. 결혼을 할 때 신부 가족에게 지참금을 주는 나라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다, 우리나라에도 '예단'이라는 제도가 남아 있으니, 신붓감에 대한 대가로 '돈'을 주는 건 그다지 비난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신붓감의 나이입니다. 15살이 채 되기도 전에 시집을 가는 소녀들이 전체 소녀의 절반이나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나이인 3살에서 5살 사이 신부로 팔려가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하는군요. 에티오피아에서도 엄연히 법률상 혼인 연령은 18살로 정해져 있는데도 말이죠. 이제 갓 11살이 된 한 에티오피아 소녀는 벌써 결혼 6년차 주부입니다. 5살 때 결혼을 했습니다. 자기가 '어딜 가는지도 모르고 가족들 손에 이끌려 가봤더니 결혼식장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신랑은 신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성인일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다처제인 에티오피아에서는 그나마 돈이 좀 있는 성인 남성이 어린 신부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부모 앞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이 소녀들은 뭘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의문이 들지만, 결론은 이 소녀들은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남편과의 성관계까지 해야 합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에는 아직 '여성 할례'가 남아 있습니다. '여성 할례'란 여성 생식기 일부를 잘라내는 것인데요, 전통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할례는 결혼을 하기 전에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 대상은 유아부터 10살 안팎의 소녀들입니다.

할례와 조혼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겪은 친구, 언니, 동생을 보고난 뒤, 소녀들이 받는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서는 무작정 집을 뛰어 나오는 소녀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멀리 가려다보니, 생전 처음 가보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넘어가고, 노숙은 기본, 또 다른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비극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UN이 나섰습니다. 집 나온 어린 소녀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더불어 학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2시간씩, 영어, 체육 등 정규 수업과 함께, 에이즈 방지와 성교육 같은 위생 교육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총 18개월 동안 이뤄지는데, 이 과정을 수료하면 정규 4학년에 맞먹을 정도의 수준이 갖춰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빈민층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최소 2년은 조혼을 막을 수 있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할례 사실 에티오피아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여자가 교육을 받아 무엇하느냐', '하루 빨리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자신도 할례와 조혼의 고통을 겪었지만, 그게 에티오피아 여자들의 의무이고 삶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힌 것입니다.

'오랜 시간 굳어진 생각을 한 순간에 바꾸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대가를 주자.' UN은 교육 과정을 수료한 소녀들에게 '염소'를 준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염소 한 마리가 2~3만 원 정도 합니다. 소녀들이 팔려가는 '가격'도 2~3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염소 값만도 못한 소녀들의 '가격'을 '지불'하고, 그들의 생계에 지장이 없게 해주는 겁니다. 염소 한 마리만 있다면, 젖도 짜고, 물건도 싣고 다니고, 개체수도 불릴 수 있어, 가난한 가족들의 생활에도 딸을 파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염소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성직자들이 나섰습니다. 기독교의 언님('어진 님'이라는 뜻), 불교의 비구니, 천주교의 수녀, 원불교의 교무, 성공회의 수녀들의 모임 '삼소회(三笑會)'가 종교와 국경을 넘어 뜻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지난 4월, 에티오피아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여성으로서, 성직자로서, 그들이 받은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 성직자는 '지옥이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은 엉망이었지만, 소녀들의 눈빛만큼은 맑았습니다. 희망의 눈빛이었습니다.

그 눈빛들을 하나하나 담아온 사진전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만, 사진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성금을 내면 됩니다. 여기서 모인 수익금은 바로, 염소를 사는 데 쓰이게 됩니다. 염소 한 마리면 2만 원, 단 돈 2만 원으로 짓밟힐 수도 있는 소녀의 꿈과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초롱초롱한 눈빛의 소녀에게 '네가 염소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ps. "염소 한 마리의 희망"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삼소회 02-735-7832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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