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마초 푸틴, 역시 사기였다!

- 정치인의 이미지 조작,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재파일] 마초 푸틴, 역시 사기였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 열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요즘, 정치인들의 이미지 조작과 관련한 논란이 다시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한나라당 후보로 연일 민생 현장을 찾아 친 서민, 복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나경원 의원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나 후보는 용산구에 있는 중증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 거동이 불편한 남학생을 취재진이 다 보는 앞에서 발가벗긴 채 목욕을 시킨 겁니다.

당시 욕실에는 전문 스튜디오에서나 사용하는 반사판과 조명장비까지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워낙 포토제닉한 나 후보이지만 복지가 화두인 선거전에서 그날 행사가 자신의 이미지를 올려줄 수 있는 이벤트라고 판단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패착이었습니다. 장애인 단체에서는 나 후보가 해당 남학생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고, 나 후보 측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국내 정치인들의 선거철 무리한 이미지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에는,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일산의 홀트복지센터를 찾아 30대 성인 중증 장애인을 알몸으로 목욕시켜 주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한바탕 곤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자기 확신과 자신감, 우월감이 없이는 살벌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정치인들의 속성상 '이미지 조작'은 어쩌면 마약과도 같은 손 떼기 어려운 고질병인지도 모릅니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 유능하고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임을 유권자들에게 과시하고 싶을 겁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이고 손쉬운 방법이 미디어를 통한 선전과 조작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이미지 선거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는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이미지 조작에 혈안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만큼 이미지 조작을 능숙하게 잘 활용하는 정치인도 드물 겁니다. KGB요원 출신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대통령에까지 오른 푸틴은 '강인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을 마초 정치인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시키고자 애를 썼습니다.

               


알몸의 상반신을 노출하며 낚시를 하고 검정색 가죽재킷 차림으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 섹시한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가 하면 산불 현장에 직접 소방헬기를 몰고 가 불을 끄는 등 현장을 중시하는 적극적인 행정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조작임을 대충 눈치 채면서도 유권자들은 그런 푸틴에게 열광했고 이런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푸틴은 내년 3월 러시아 대선에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이 유력시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푸틴의 이미지 행보가 실제로 조작됐음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여름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언론들은 푸틴이 흑해에서 고대 유물을 건져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었습니다. 멋진 잠수복을 입고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 케르치 해협에 뛰어든 푸틴은 수심 2미터 바닷물 속에서 항아리 두 점을 발견했는데 그 항아리가 알고 봤더니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진귀한 유물이라는 겁니다. 당시 러시아 언론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푸틴이 "친구들과 내가 보물을 찾아 냈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자신이 키운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과 차기 대선 출마를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던 푸틴은 이 항아리를 자신의 '트로피'라면서 기세를 높였고, 언론 보도 내용을 접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분명히 "푸틴은 정말 대단해!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뭔가 잘 될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 달 푸틴은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과 대통령-총리직 맞교환에 전격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보물 항아리 발견이 차기 대선 출마 확정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물론 알 길이 없습니다.

고고학자나 전문 잠수부도 아닌 푸틴이 수 천 년이나 된 유물을 찾아냈다는 바다 밑에서 찾아냈다는 이야기 자체가 우연, 아니 행운이라고 보기엔 너무 황당해서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작이라고 의심했었습니다. 그때는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결국 두 달 만에 러시아 총리실 공보실장이 당시 유물을 건져 올리는 장면은 연출된 것이었다고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푸틴이 흑해에 도착하기 몇 주 전에 고고학자들이 찾아 낸 항아리를 미리 약속해 둔 장소에 놓아 둔 다음 마치 푸틴이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겁니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이런 배신감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공보실장 이 분, 바로 옷 벗어야 되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가 거의 손아귀에 들어 온 마당에 주도면밀한 푸틴이라면 공보실장의 '말 실수' 정도는 너그럽게 용서해주면서 '통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하나 더 만들어 내는 편을 선택할 것도 같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당한 정치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일 텐데 러시아인들은 별로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무리한 이미지 조작이 들통 났던 또 다른 정치인은 바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입니다.

                     
               


165cm 아담한 키의 사르코지는 정말 뼈속 깊이 '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신보다 8cm나 큰 영부인 브루니에게는 항상 굽 없는 신발만 신게하고 장신 경호원은 아예 뽑지도 않았습니다.

이걸로도 모자랐던 장신의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까치발을 서는가 하면 몰래 단상에 발판을 놓아두고 올라서거나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주변에 단신자들을 집중 배치해 자신이 커보이게 연출해 온 사실이 드러나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축 처진 뱃살이 고스란히 찍힌 사진을 포토샵을 통해 날씬하게 조작했다가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사르코지의 눈물겨운 외모 조작 노력을 애교로 봐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권력을 이용한 상징 조작이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인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정치인의 이미지 조작의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은 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낳은 아돌프 히틀러의 사례였습니다.

집권 초기 변변한 카리스마나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히틀러는 민족의 영웅으로 불린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에 기대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비스마르크 시절 권위와 군국주의 정책을 나치의 이데올로기에 꿰맞춰가면서 독일인들을 세뇌시켜 유럽을, 아니 전 세계를 전화에 휩싸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선전상이었던 괴벨스가 그 첨병에서 대중들을 현혹시켰습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계 제로의 경제 위기 속에 2012년 '선거의 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총선과 대선이 줄지어 있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인도, 멕시코 등 글로벌 경제난 해결의 열쇠를 쥔 G20과 유로존 가운데 대선을 치르는 나라가 10개 국에 달합니다.

정치인들이 그럴 듯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선전하는 '이미지 조작'의 계절이 다시금 도래한 겁니다. 허울에 사로잡히지 말고 눈 크게 날카롭게 뜨고 그 속에 숨겨진 그들의 참 모습을 꿰뚫어보는 유권자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