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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물렁게·뻥게를 아십니까?

'꽃게 풍년'에 감춰진 진실

[취재파일] 물렁게·뻥게를 아십니까?

가을 꽃게철을 맞았습니다. 간장게장, 꽃게찜, 꽃게탕 등 꽃게는 우리 국민들이 즐겨먹는 바다 식재료입니다. 꽃게 중에서도 연평도산은 알아주죠. 청정 해역 연평도와 주변의 서해 특정도서에서 국내 꽃게의 60% 가량이 나옵니다. 제철을 맞은 연평도 꽃게잡이를 취재했습니다.

연평도 꽃게잡이배 만선...연평 어민 모처럼 활기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진 이후 꽃게잡이를 주 생업으로 하는 연평 주민들은 이렇다할 어획고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올 봄에도 혹한으로 꽃게가 자취를 감춰, 꽃게잡이를 포기하는 어민들이 속출했습니다. 포격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뒤... 연평도 가을 꽃게가 돌아왔습니다.

꽃게를 잡는 방법에는 그물로 꽃게가 걸리게 해서 잡는 방법(닺자망)과 그물 안에 포획하는 방법(안강망)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연평어민들은 전통 방식인 닺자망을 주로 활용하는데, 그물에 걸린 꽃게는 금방 죽기 때문에 요즘에는 살아있는 꽃게를 잡기 위해 안강망을 많이 사용합니다.

연평도에서 배를 타고 나가기를 1시간 반쯤. 꽃게잡이 어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민 5~6명이 망 안에 가득찬 꽃게를 배 위로 들어올리는데, 5백kg 정도 되는 양이었습니다. 갑판에 쏟아내는 순간 살아있는 꽃게가 발버둥치는데 장관입니다. 어민들은 활꽃게는 배에서 바로 손질해서 신선도를 유지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잡은 꽃게 양이 배마다 다르지만 무려 4~5톤에 달합니다. 만선의 기쁨을 느끼는 어민들은 포격사건으로 우울했던 시름을 떨쳐버립니다.

꽃게를 가득 실은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면 이내 꽃게 손질이 시작됩니다. 마을 주민들이 열댓명씩 둘러앉아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내고, 크기에 따라 선별해 운송 상자에 담습니다. 한 주민은 지난 2002년 이후 최대의 물량이 잡히고 있다며 돈 많이 벌 수 있어 좋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꽃게 손질은 밤 12시까지 계속됐습니다.

선별된 꽃게는 다음날 아침 운송선에 실려 인천 수협 공판장으로 이동합니다. 이 곳에서 꽃게 가격이 처음 매겨지는데 공판장에서도 꽃게가 가득했습니다.  꽃게가 많이 잡히면 가격이 자연히 내려갑니다. 하지만 꽃게 가격이 내려가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꽃게 상태가 생각만큼 좋지 않은 겁니다.

물렁게와 뻥게 등 미성숙 꽃게 30% 가량 폐기



물렁게는 껍질이 물렁물렁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뻥게는 살이 차지 않은 꽃게를 이르는 말입니다. 작은 치게까지 포함해서 이들 꽃게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미성숙 꽃게들입니다.

문제는 만선의 기쁨 뒤엔 버려지는 꽃게가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연평도의 경우 꽃게잡이가 9월1일부터 시작되는데, 올해는 혹한으로 꽃게가 껍질을 제대로 못벗어 성장이 늦춰졌습니다. 꽃게는 1년에 10여 차례 탈피를 하는데, 탈피를 해야 어른 꽃게가 될 수 있는 겁니다.

9월15일에 수산과학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연평도에서 잡은 꽃게 2천 톤 가운데 1,100톤인 55%가 이런 미성숙 꽃게들이었습니다. 모두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린 셈이죠.  9월 초순에 잡은 꽃게는 3분의2가 이런 물렁게나 뻥게라 하더군요.

애써 잡은 꽃게를 버려야 하는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꽃게를 일찍 잡아야 합니다. 꽃게를 늦게 잡는다고 누가 보상을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민들도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꽃게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조업을 늦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겁니다.

꽃게는 꾸준한 치게 방류와 단속으로 어느 정도 자원양이 회복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평균 크기가 13.6cm이던 것이 올해는 12.4cm로 1cm 넘게 작아졌습니다. 잡아서는 안 되는 어린 꽃게 어획 비율도 지난해보다 두 배나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다 자라지 않은 꽃게를 너무 일찍 잡는 겁니다.

지속적인 어업을 위해 꽃게 금어기 다시 조정해야...

어민들과 많은 얘기를 나눠본 결과, 지금 잡히는 꽃게도 연평도 어장 전체가 아닌 남쪽에서만 잡히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든 꽃게가 다시 안 잡힐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꽃게 어획량은 지난해 3만 톤을 넘었지만, 계속 잡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렇게 어린 꽃게를 잡아 버리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우리 후손들은 꽃게를 맛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민들은 물론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기를 꺼려합니다. 어민들의 당장의 생계 문제가 달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평도에 달려간 이유는 이런 문제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공론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맛있는 꽃게를 먹기 위해 어민과 소비자 모두 보름 정도만 더 참으면 어떨까요? 현재 9월 1일부터인 조업 시작일을 보름 정도만 더 늦춘다면 물렁게, 뻥게의 어획과 폐기량을 줄일 수 있고 대신 살과 알이 꽉찬 꽃게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민들에게만 이런 짐을 지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조업 기간을 늦추는 만큼 수협이나 정부가 어민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해주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린 꽃게는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그물망을 새로 개발하고 어린 꽃게를 잡으면 다시 바다에 놔주는 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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