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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동성애학과'가 취업 짱이라고?

[취재파일] '동성애학과'가 취업 짱이라고?

구약성서 창세기 편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을 성적인 타락, 다시 말해 동성애의 창궐에서 찾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땅의 정결함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현존을 위협하는 가증스러운 존재로 간주돼 사형 당하곤 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서양 권에서 동성애(homosexuality)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20세기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 인종청소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에 대한 학살도 자행해 실제로 동성애자 수십만 명을 죽였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란 투린 역시 동성애를 터부시하는 세상에서 설자리를 잃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투린은 1950년을 전후해 동성애 혐의로 옥살이를 하게 되자 청산가리를 바른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목숨을 끊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어 애플의 유명한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4, 5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 자체를 형사 처벌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교적 보수사회였던 우리나라나 중국 등 동양권에서는 오히려 동성애를 쉬쉬하면서 모르는 척 관용해 왔습니다. 역사서를 봐도 동성애자란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쌍화점'이나 '왕의 남자' 같은 영화에서도 보듯이 치정에서 비롯된 질투와 미움 때문에 해코지를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였을 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 세계의 그림자 뒤에 은밀히 숨겨져 왔던 동성애는 '다양성'을 불가침의 시대정신처럼 추앙하는 금세기가 도래하면서 본격적인 '커밍아웃'의 단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이유로 공개적인 불이익을 받는 일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고, 오히려 소수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그동안 빼앗겼던 권리를 돌려줘야 마땅하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습니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야 했던 동성애자들이 힘을 얻게 된 데는 미셸 푸코를 위시해 자크 데리다, 장 폴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봐르 같은 진보 지식인들의 공이 컸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동성애자들이었습니다. 『광기(狂氣)의 역사』라는 명저를 통해 소위 합리적 이성이라는 명분하에 주류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비정상 취급하고 배제하고 억압했는지를 파헤쳤던 푸코도 마찬가집니다.

               



학창 시절부터 동성애적 경향을 보였던 푸코는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못했습니다. 1984년 결국 에이즈로 삶을 마감했을 때 리베라시옹을 비롯한 주류 언론들은 자국이 배출한 위대한 철학자의 사인이 에이즈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는 기사까지 실었습니다. 푸코가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속에서 얼마나 답답해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이 이렇게 결실을 맺으면서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 6월 뉴욕 주 의회가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미국 내 6번째 주가 됐습니다. 수도인 워싱턴도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에서는 대학에 동성애학과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립대 본부가 이번에 동성애학과 신설을 승인해 내년 봄 학기부터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 대학에서는 이미 2009년부터 동성애학을 커리큘럼에 포함시켜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동성애학과에서는 무엇을 공부할까요? 예상대로 남녀 동성애 연구는 물론 양성애 그리고 성적 정체성 부적응이나 성전환자들을 연구하고 가르칩니다. 동성애학은 단지 '성'에 국한된 학문이 아니라 의학이나 심리학, 법학, 경영학 같은 다양한 인접 학문들과 관련된 이른바 '통섭 학문' 분야인데다 기업들이 점차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학생들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학과 졸업생들이 취업에 상당히 유리하다고 학교 측은 선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애학과 개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이미 뉴욕 주 제네바라는 곳에 호바트& 윌리엄 스미스 대학에 미국 최초로 동성애학과가 탄생했습니다. 유럽에서도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비엔나 같은 국제도시에 가보면 핑크색으로 칠한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집에는 동성애자가 살고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타고 났건 아니면 후천적으로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자아를 새로 발견했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런 동성애자 증가 현상의 중심엔 인구 대국 중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49년 공산주의 정권 출범 이후 중국에서는 줄곧 금동성애가 금기시 되어 왔습니다. 동성애를 퇴폐적인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이자 봉건적 사상의 유산이라고 백안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중국 당국도 점진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거의 없어 굳이 편견을 가질 필요성이 없다는 당국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국정신의학협회'는 2001년에 '정신질병목록'에서 '동성애'를 아예 제외시켰습니다. 

               


개혁개방의 일번지인 상하이의 상하이대학에는 중국 학부 최초로 동성애와 동성애 문화(Gay culture)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중국에 널리 퍼져 있는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없애고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수백 명의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TOP 3 대학으로 꼽히는 푸단 대학에도 2003년부터 동성애 강좌가 매년 개설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에이즈 예방을 중심으로 동성애자들의 건강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현재 중국에만 남성 동성애자들이 5백만에서 1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서서히 동성애 해방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홍석천 씨가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가 한동안 TV 출연을 못했던 일은 어느새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의 구 시대 기억이 됐습니다. 이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떳떳이 밝힌 연예인들이 별 불편함 없이 TV나 스크린에 등장하고 있고 심지어 동성애가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 소재가 되는가 하면 동성애자 전용 클럽이나 바를 눈치 안보고 당당하게 출입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우리나라 대학에도 동성애학과가 등장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대학 나와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측의 주장처럼 동성애학과 졸업생이 취업이 잘 된다는 입소문이라도 나면 '동성애학과'가 인기학과로 떠오르는 것도 어쩌면 시간문제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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