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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기가 '성(性)' 박물관인가요?!!"

거리에 내걸린 모나리자 누드

삼청동 초입, 행정구역상 소격동 입구, 1년에 천만 명 정도가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시민을 비롯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그 곳에, 세상에, 벌거벗은 여인의 누드가 떡하니 걸렸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나리자입니다. 모나리자 특유의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띤 채 요염한 자태로 누워 있는 모습입니다. 그나마 중요 부위는 나뭇가지로 교묘히 가렸습니다. 몰래 숨어봐야만 할 것 같은 누드가 길가에 대놓고 있으니, 사람들은 흠칫 놀란 눈빛입니다.

"여기가 성(性) 박물관인가요?" 심지어 이렇게 묻는 분도 있습니다.


☞문제의 사진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몸을 보이는 게 부끄럽기는 한 모양인지, 모나리자의 볼이 발그레하군요. ^^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얼굴과 독일 작가 크라나흐 루카스의 '강의 요정'의 몸을 합성한 작품입니다.

대체 뭐 때문에 시내 한 복판에 누가 이런 누드를 그려놓은 것일까요.

사실 모나리자의 뒤로는 공사장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바로 공사장 가림막입니다.

길이만 무려 3백 미터에 달하는 곳. 가뜩이나 보행자들이 많은 곳입니다. 그냥 뒀으면 너무 삭막하고 먼지만 폴폴 날려서, 눈살이 찌푸려지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아트 펜스' 미술 가림막이 들어서면서 그런 걱정은 덜게 됐습니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지나가는 사람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사진도 찍고, 관광 명소로까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아트펜스' 작업은 '광고천재'로 불리는 '이제석 광고연구소'에서 맡아 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제석 씨의 대표 광고 작품입니다. 1장의 사진이지만, 정말 큰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광고계의 기린아답게 이 씨의 가림막 작업도 파격적이고 익살스럽습니다. 게다가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하는 궁금증까지 불러일으킵니다. 공사장의 흉물스러운 모습은 가리는 가림막 역할은 물론이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장소에 대한 상상까지 하게 하는 광고판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파격과 충격'이라는 현대 미술의 성격까지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현대 미술을 누구나 좀 더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게도 합니다.



☞한국의 발전상에 놀란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가림막 위로 한 외국인이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신윤복 '미인도'의 미인인 가채까지 벗고, 한 올도 걸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본 모나리자처럼 부끄러워서 볼은 발그레해졌고, 앞가슴을 살포시 손으로 가리고 가림막 뒤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면 밑에는 맨다리도 보입니다.^^


이런 '아트펜스' 작업은 지금까지 여러 번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지난 2005년 광화문 복원 당시 놓였던 가림막입니다. 강익중 작가의 '광화문에 뜬 달'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달 항아리로 한국의 대표 건축물 광화문을 그렸습니다. 한동안 광화문을 볼 수는 없었지만, 강 작가의 작품을 보며 그 아쉬움을 달랬었죠. 광화문 복원이 끝난 지금, 이 작품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네요.^^ 한 조각씩 떼어 시민들에게 나눠줬으면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이후 광화문 앞에 우뚝 선 이순신 동상이 세척을 하러 갔을 때도 그 빈자리를 가림막이 대신했습니다. 당시에도 이번 현대미술관 작업에 참여한 이제석 씨의 작품이었죠. 이순신 장군이 옷을 갈아입는 듯 한 상상을 하게 하는 아주 기발한 작품이었습니다.

'위험! 공사중!' 이런 문구를 볼 때마다, "뭐야, 또 공사야?" 하고 짜증날 때가 많습니다. '아트펜스'가 들어서면서 이런 짜증은 좀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뭐야?" 하면서 궁금해지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까요.

또, 어렵기만 할 것 같은 현대 미술을 '언제나 곁에서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기회까지 얻는 건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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