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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입양인에서 상원의원까지

상원의원 되니 한국에서 관심을...

[취재파일] 입양인에서 상원의원까지

외모로는 평범한 40대 초반의 구수한 직장인으로 보이지만, 장-뱅상 플라세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인물이 최근 한국의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1968년에 태어나서 7살 때인 1975년 프랑스로 입양된 인물. 부지런한 기자들이 여기 저기 수소문해 권오복이라는 본명을 알아냈지만, 본인은 정작 입양 당시 함께 가져왔던 서류를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을 정도로 관심조차 없었다는 인물. 만 20세가 되던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며 전세계에 대한민국이 알려졌을 때, 양부모가 한국에 다녀오라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던 인물.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과 담을 쌓고 살아오며 플라세는 스스로 프랑스 사회의 주류가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데, 자신을 입양해온 양아버지는 우파적 성향을 가진 변호사였지만, 플라세의 출발은 극좌파였습니다. 그러다 녹색당으로 정치적 노선을 바꿔 상원의원까지 오르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의 상원의원은 미국의 상원의원과 위상이 좀 다릅니다. 선거인단의 간선제로 뽑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그만큼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법 제정 절차도 많이 다릅니다. 일단 하원을 거쳐 상원까지 통과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하원과 상원의 표결 결과가 다를 경우 상·하원 동수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논의하고, 그래도 결론이 안 나면 하원이 결정권을 갖습니다.

프랑스 역사상 이미 두 번이나 구성됐던 좌우 동거 정부도, 대통령과 내각이 서로 다른 정당으로 구성되는데, 그 기준은 하원입니다. 그래서 이번 상원선거에서 좌파가 과반수를 장악했지만 내각 구성에는 관여를 못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직접 뽑는 하원과 선거인단이 뽑는 상원의 차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원의원은 명실공히 프랑스의 대의기구이고, 프랑스 정치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플라세의 상원의원 진출은 분명 대단한 성공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플라세 상원의원 당선자에 대해 대한민국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미 그가 프랑스라는 완전히 격리된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뒤였습니다. 2010년 8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르 피가로는 한 면을 통틀어서 플라세의 스토리를 다룹니다. 녹색당의 실질적인 2인자로 프랑스 중앙 정치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인물이, 알고 보니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버려져 프랑스로 입양된 비주류 출신이었다는 신기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름 프랑스가 그만큼 열린 사회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요.

상원 선거가 열리기 직전 플라세 당선자를 만났을 때 한국과의 인연을 묻자, 대뜸 나오는 대답이 바로 르 피가로 이후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42세였으니까 입양된 후 35년 동안은 대한민국과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온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습니다. 의례적으로 한국의 이미지나 한국에서 태어난 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대답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플라세 당선자에게 한국을 가르치고 한국을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녹색당 2인자로 우뚝 서기 전까지는 한국의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파원들이 앞다퉈 몰려가고, 다음 달로 예정된 한국 방문에 맞춰 유력자들이 만나려고 하는 것을 보며 플라세 당선자 뒤에 가려진 수많은 입양인들이 스쳐갔습니다. 프랑스는 미국 다음으로 한국 입양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물론 9만 명에 가까운 미국에 비하면 훨씬 적지만, 한국 전쟁 이후 1만 명이 넘는 우리의 아이들이 입양됐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아는 입양인은 플라세가 유일합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다고 하는 지금도 유럽 각국마다 매년 100여 명씩 입양인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입양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가 있고 또 나가는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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