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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YS 손자와 국위선양자 전형

쓰지 못한 기사 '입학사정관제 이대로 괜찮은가?'

[취재파일] YS 손자와 국위선양자 전형

지난주 월요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국회 교과위 국정감사 현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게 연세대 국위선양자 전형 합격자 관련 정보를 요구하던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갑자기 목청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전 최고권력자의 손자가 국위선양자 전형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현장의 기자들은 웅성댔고, 이후 몰려든 기자들에게 김 의원은 "매우 확실한 제보를 가지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한 국회의원의 '제보자'가 되어버린 순간이었고, 한 달 간 공을 들였던 취재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입학사정관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는데 단초가 될 수 있었던 'YS 손자의 합격기'가 정치권의 가십거리로 전락해버리는 순간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네, 김 의원의 '확실한 제보자'는 바로 저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고자 했지만 결국 쓰지 못하게 된 기사는 '대통령 손자' 이야기가 아니라 '2011년 대학민국 입학사정관제'의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8월 어느 날, 교육 관련 종사자인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연세대의 이상한 전형'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바로 입학사정관제 전형 사회기여자 트랙인데요, 대부분 다른 대학의 사회기여자 전형이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민주화운동관련자 등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데, 연대의 이 전형에는 또 다른 지원자격 유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건 '국위선양자' 유형으로 국위선양자와 그 자녀, 손자녀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학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연대 자료를 보면 '국위선양자'란 '학술, 예술, 과학기술, 산업 분야 등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자'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전형은 강남의 '잘 나가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부금 안 내도 되는 기부금 입학 전형'으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고위 공직자,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오너들 사이에서 자녀나 손자녀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학에 입학시킬 수 있는 전형으로 통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지난해에도 상당한 고위 공직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국위선양'을 근거로 이 전형에 지원한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기여자의 자녀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학기회, 취업기회를 제공하는 건 그들이 '부모가 나라를 위해 한 일 때문에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등은 모두 훌륭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조차도 경제적 사회적 고통을 함께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 사회는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차원에서 그들에게 입학과 취업에서 조금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국위선양자'는 어떤가요? 연대가 말하는 '국위선양'의 기준을 보면 부모와 조부모의 '국위선양'은 경제적 윤택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로 인해 이미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고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은 그 자녀들에게 왜 다른 대부분의 수험생과는 다른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학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헌법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는데, 당사자의 땀과 노력의 결과가 아닌, '부모나 조부모의 성과'가 대입 지원의 자격으로 당당히 주어지는 현실은 '정의롭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쓰기 위해선 의혹과 문제제기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특권층의 자녀들이 이 전형으로 입학을 했는지를 실제로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남짓 뒤 저는 YS의 손자가 이 전형으로 연세대에 입학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그 구체적인 취재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장벽을 만났습니다. 연대 사회기여자 전형에서 '국위선양자의 자녀나 손자녀'에 해당해 입학한 다른 합격자들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김춘진 의원실의 보좌관과 대화를 하다 연세대 사회기여자 트랙의 국위선양자 전형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국감에서 관련 자료를 요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상대를 믿고 YS의 손자도 이 전형에 합격한 사실을 확인한 상태인 만큼 다른 특권층의 자녀, 손자녀도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배경설명을 해줬습니다. 현 상황에서 국감장에서 대통령 손자 얘기가 나올 경우 가십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데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에 대한 추가취재가 마무리 될 때까지는 보안을 유지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믿고 한 얘기는 국감장에서 폭로처럼 터져나왔고, 예상했던 대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문제라는 본질은 덮혀 버렸습니다. 쓰고자 했던 기사는 시작도 되기 전에 동력을 잃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고 '대통령 손자'의 얘기는 가십거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최악의 결과였습니다.

대통령의 손자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수험생이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형이 있다면 그 전형에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어떻게 그 학생을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국위선양자 전형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합격한 학생들에게 있는게 아니라, 수많은 수시 입학사정관제 전형들 사이에 '특권층을 위한 전형'을 끼워넣은 대학 당국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전형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는 교육당국과 자신들의 자녀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두 눈 감고 모른 척 하는 당국의 관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학과 교육당국의 책임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국회의 질의에 대해서도 연대는 전가의 보도처럼 '개인정보'라는 이유를 대며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합격자와 관련된 개인정보를 요구한 게 아니었건만, 전형과 관련된 어떤 통계자료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문제의 국위선양자 전형의 실체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쓰지 못한 기사를 대신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학민국 입학사정관제' 그리고 대학의 '자율성 vs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말이죠.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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