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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년만의 사형집행…사형제 논란 불붙다

[취재파일] 20년만의 사형집행…사형제 논란 불붙다

트로이 데이비스라는 올해 42살 된 흑인 남성이 어젯밤 (미국시각 9월 21일 밤 11시 8분)에 사형됐습니다. 약물을 주입한 지 15분만에 숨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1989년에 조지아주 사바나시의 한 주차장에서 업무를 마친 백인 경찰관을 총기로 살해한 혐의로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데이비스의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데이비스는 검거된 직후부터 자신은 총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경찰관을 살해할 수도 없었다는 얘기죠. 하지만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9명이나 되는 증인들이 데이비스가 총을 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진술들을 근거로 데이비스에게는 1991년 8월에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사형이 선고된 지 20년이 지나서 사형이 집행됐으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데이비스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변호인들도 데이비스의 주장을 믿고 끊임없이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을 막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연방대법원까지 재심을 했다고 하니까 데이비스 측의 노력의 정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재심을 했다는 것 자체가 데이비스의 주장에 일정 부분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데이비스에 불리한 주장을 했던 증인 9명 가운데 무려 7명이 자신의 증언을 뒤집거나 증거에서 자신의 진술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이들중 상당수가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강한 압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진술을 뒤집지 않은 두 명 중 한 명이 이 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나왔는데도 결국 초기 수사의 결론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문제라는 게 데이비스 측의 주장입니다. 당연히 의심을 가질 만한 정황이죠.

그러나 사형판결을 뒤집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데이비스가 살인범이 아니라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서 2007년 6월에 최종적으로 데이비스의 사형을 확정지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데이비스 측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지아주 정부와 조지아주 대법원에 끊임없이 이의제기를 했습니다. "살인범이 아닌 억울한 사람을 사형시키는 무서운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논지였습니다. 이의 제기와 기각 같은 절차들이 10차례나 반복됐고, 2011년 9월 21일 저녁 7시로 사형집행 시간이 확정됐습니다. 사형 집행 이틀 전에도 변호인단은 다시 조지아주에 이의제기를 했고 결국 기각됐습니다.

초침은 무심하게 흐르고, 사형 집행을 불과 한 시간 남겨둔 상황에서 데이비스의 변호인단은 다시 연방대법원에 최종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데이비스에게 힘이 된 것은 데이비스가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무려 66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을 취소해야 한다는 청원서에 서명을 해서 데이비스에게 보냈습니다.



여기에는 국제앰네스티같은 국제적인 인권기구도 동참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데이비스가 수감돼 있는 곳이자 사형집행 장소인 조지아 교도소 앞에서, 마지막 심사를 벌이는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데이비스에게 생명을, 정의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데이비스에게 힘을 보탰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서 사형집행 시간 저녁 7시를 넘겼습니다. 그런데도 연방대법원의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시간, 또 한 시간.. 이렇게 연방대법원의 검토가 길어지면서 일각에서는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이 중단될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CNN의 법조전문기자는 "보통 대법원은 이런 최종 이의제기가 와도 사형집행 시간 전에 근거없다며 예정대로 사형을 집행하라는 결론을 불과 몇 분 안에 내곤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세 시간 이상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대법원 판사 간에 이견이 있다는 것이고, 뭔가 예상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4시간을 넘긴 어젯밤 10시 30분쯤 연방대법원은 또 다시 "데이비스가 범인이 아니라고 볼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논지로 데이비스의 최종 이의제기를 기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지아주 교도소 앞에서도, 연방대법원 앞에서도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여분만에 데이비스는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제 저녁 6시부터 데이비스가 사형된 11시 8분까지 모두가 데이비스편이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숨진 경찰관의 어머니는 최종 이의제기로 사형집행이 연기되자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나는 너무 괴롭다. 첫 재판 이후로 데이비스가 유죄라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들이 죽고 나서 20년 동안 끊임없는 재판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평화를 찾고 싶다. 어서 빨리 이 괴로운 책장을 덮고 싶다"면서 데이비스에 대한 조속한 사형 집행을 촉구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은 훌륭한 품성의 소유자였고, 군인으로서 오래 복무하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전역을 신청한 뒤에 경찰관으로 근무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총에 맞아, 그것도 얼굴에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얼굴에 총을 맞았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죠?"라고 이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크디 큰 분노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아들이 죽은 뒤로 20년 동안 얼마나 괴로운 시간들이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와 인터뷰했던 CNN의 앵커는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이렇게 힘든 인터뷰에 응해줘서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희생자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충분히 짐작했겠죠.

그녀에게나, 데이비스에게나, 데이비스의 유죄 혹은 무죄를 믿는 사람들에게나 그 어느 때보다 길고 긴 4시간이 흐르고 데이비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이비스의 원래 사형집행 시각이었던 저녁 7시쯤 텍사스주에서는 흑인을 트럭 뒤에 묶어놓고 3마일(5킬로미터) 이상을 달려 숨지게 한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의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데이비스에게 미국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다보니 이 사형수의 사형집행 소식은 짤막하게 전달됐습니다. 죽기 전 본인이 원하는 최고급 식사를 했고, 가족과 친구들과 마지막 통화를 하도록 허용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데이비스의 사형이 집행되면서 모든 것이 끝나는 듯 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범인이라고 하기에는, 그리고 그 죄를 물어 사형을 통해 그의 목숨을 빼앗기에는 너무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는 사람을 사형시킨다는 것은 문명국가의 수치나 다름없다는 비판과 질책들이 쏟아졌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형집행은 미국의 사형제도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고 낡아빠진 제도인가를 여실히 보여줬다.이번 비극은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사형제도를 폐지하는데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데이비스를 도왔던 많은 시민들도 "우리의 투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 2, 제 3의 데이비스가 나오지 않도록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미국을 흔히들 자유와 인권, 민주의 국가라고 하는데, 미국은 매년 사형집행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미국보다 사형 집행이 많은 나라는 중국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하네요.

사형제도는 흔히 국가에 의한 합법적인 살인이라고 합니다. 보복이나 복수차원이 아닌 정의의 집행이라고도 합니다. 사형수에 의해 유린당한 피해자의 목숨과 존엄등을 생각해 보면 사형제도는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사형수가 진짜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50%를 넘는다면, 아니 단 1%라도 남아 있다면 사형제도는 자칫 국가에 의한 또 다른 살인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것이 바로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국제 엠네스티는 데이비스의 사형이 집행되기 전 미국 정부에 "사형집행 중단"을 촉구한 데 이어 한국 정부에도 편지를 보내 "5,000일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데 찬사를 보낸다"며 "이제 법률적으로도 사형제도를 폐지"하기를 촉구했습니다.

이번 데이비스의 사형집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대학시절 읽었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데이비스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내 목숨을 거둬가려고 한 사람들에게 신의 자비와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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