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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곽노현의 이상한(?) 고백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바라보며

[취재파일] 곽노현의 이상한(?) 고백

준비된 자 vs. 준비 안 된 자

기획취재팀에 오기 전 사회부에서 법조 출입을 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일반인들의 소소한 사건부터 유명인들의 큼지막한 재판까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지명도와는 상관없이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 되더군요. '준비된 사람'과 '준비가 안 된 사람'으로 말이죠.

전자는 재판 경험이 많거나, 유명 로펌의 조력을 받는 사람, 법조인 본인 등이고요, 후자는 그 반대의 경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준비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습니다.

준비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하면 '답변 요령'입니다. 범죄 혐의를 입증해 주는 물증이 있는 경우야 어쩔 수 없지만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진술이 결국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사, 재판에서는 공인이 일반인보다 훨씬 불리합니다. 일반 사람들이야 경찰이나 검사, 판사가 하는 질문에만 답을 하면 되지만, 유명인들은 수많은 기자들의 질문에까지 답을 하게 되니까요.

수사기관에서 행사하는 묵비권이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기자들 앞에서의 침묵은 법적 판단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구름같이 몰려드는 기자들 앞에서는 그저 입을 다무는 편이 훨씬 현명한 전략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재판 결과만 두고 따졌을 때 그렇다는 말이고요.)

이 때문인지 준비된 사람들은 기자들 앞에서 대개 이런 말을 즐겨 씁니다.

"성실한 자세로 수사에 임하겠습니다" 라거나,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와 같은 말을요.

곽노현은 준비된 사람?

기소를 앞둔 곽노현 교육감은 어느 편에 속할까요? 준비된 사람일까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일까요?

모두 아시는 것처럼 곽 교육감은 법학자 출신입니다. 준비된 사람의 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제가 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무엇이 다르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혹시 모를 피해를 예방하려는 노력 역시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곽 교육감의 자세한 혐의 사실을 두고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실로 확인된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직 대통령 자살’이라는 전례 없는 경험을 하고서도 여전히 같은 모양새라고 지적받고 있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언론인의 한 사람이긴 하지만, 저 역시 못마땅하기 때문입니다.)

2억 원이 건너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곽 교육감 본인이 그렇다고 밝혔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사건의 쟁점을 대가성 여부로 인식하고 양측의 사전 합의가 있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증언과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보도도 있고, 대가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 법리 공방이 치열할 것이란 보도도 있습니다. 법적 결과와는 별도로 이미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분석도 있고, 법원 판결이 있기까지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요.

어떤 내용을 지지하시든 선택은 자유입니다만,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진행된 이런 내용과는 조금 다른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비판도 논쟁도 환영합니다. 다만 부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먼저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엇이 쟁점인가?

재미없는 법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으니 건너뛰셔도 좋습니다.)

이번에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교수 두 사람에게 적용될 혐의는 공직선거법입니다. 후보자 매수를 금지한 조항을 위반했다는 거지요. 법률용어 중에 구성요건(構成要件)이라는 게 있습니다. 법원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따질 때 가장 먼저 살피는 내용인데요, 해당 법이 범죄라고 정한 내용(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법조항이 정한 대상, 행위, 범위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는 거지요.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후보자 매수는 두 가지 경우 입니다.

1.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거나(즉, 후보 등록을 못하게 하거나)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후보를 사퇴하게 하려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나 후보자에게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돈이나 관직을 주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주겠다는 뜻을 전했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주겠다고 약속한 사람)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후보 등록을 포기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후보 사퇴를 한 것에 대해) 대가를 목적으로(대가를 지불하려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후보 준비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후보 사퇴자에게)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돈이나 관직을 주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주겠다는 뜻을 전했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주겠다고 약속한 사람)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공직선거법 242조 2항을 자세히 보시면, 후보자 매수 조건을 두 가지로, 행위를 세 가지로 나눠 놨습니다.

<조건>
1. 후보 등록을 중지한데 대한 대가로
2.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로

<행위>
1. 금품 등 재산상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2.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3. 제공을 약속했거나.

때문에 논쟁이 되는 '사전합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을 주겠다고 했거나, 각서를 써주고 약속을 한 경우도 처벌을 받지만, 그저 후보를 사퇴한 대가로 돈이 건너갔다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사퇴하면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약속이 없었더라도 사퇴 대가로 돈이나 관직을 주면 처벌한다는 겁니다. 선거는 민주사회의 근간이기 때문에 아주 엄격하게 보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엔 돈을 주고받은 '주체'가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후보 당사자가 주고받았느냐, 실무자가 주고받았느냐에 따라 처벌 대상이 나뉘니까요. 하지만 이 경우는 곽 교육감 본인이 선의로 돈을 건넨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실무자들끼리 주고받은 거라 몰랐다고 주장하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돈이 오간 사실을 한참 후에 알았다’고 주장할 경우기자회견 내용을 번복하게 되니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만 떨어지겠죠. (그래서 유명인이 일반인보다 재판 받기 불리하다는 거고요)

일부에선 곽 교육감과 박 교수 두 사람 모두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두 사람 모두 부인하더라도 대가성이 의심되고 이게 입증된다면 처벌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쪽이 자백한 경우라면 사건이 훨씬 간단하겠지요.

그럼 대가성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요? 대가를 목적으로 돈을 건넨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을 복합적으로 따져보고 상식선에서 판단하겠지요.

후보 사퇴가 아니었어도 2억 원을 줬을 것이냐, 두 사람의 평소 친분관계는 어땠는가, 곽 교육감의 경제력에 비춰 금액의 크기는 어떤가, 돈이 전달되는 과정은 어땠는가, 곽 교육감이 법적인 자문을 구해 볼 수는 없었는가 등등...

재판 경과와 결과를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많이 다뤄보신 판사 분들은  곽 교육감에게 쉽지 않은 재판이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곽노현 교육감은 이상한(?) 사람

어감이 좀 좋지 않습니다만, 제 눈에 곽 교육감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통의 '준비된 사람'이었다면 이런 수순을 밟았을 테니까요.

1. 검찰의 수사 사실을 듣는다.
2. 기자들에게 해명하기에 앞서 변호사와 상의한다.
3.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수사시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4. 보복수사라 규탄하며 돈 전달에 대해서는 언급이나 즉답을 피한다.
5.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검찰과의 대결구도를 만든다.
6.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검찰과 이를 받아쓰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한다.
7. 돈 전달자들, 관계자들, 변호인과 긴밀히 상의한다.
8.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선언한다.
9. 검찰 수사를 받는 동안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
10.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끈다.
11.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억울함을 주장한다.

제가 법조를 출입하는 2년 동안, 많은 유명 인사들의 대응이 대개 비슷했습니다. 소위 보수라 불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를 진보라 칭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대응하더군요. (아마도 기사에서 많이들 봤던 표현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분들이 전부 몰염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비난을 받고, 모양새가 좀 빠지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일부 생기더라도 적어도 법적 판단을 받는데 있어서는 저런 대응이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그게 최선일 수도 있겠지요.

유무죄 여부나 가치 판단을 따지기 전에, 자칫하면 중형을 받을 수도 있는 사건의 당사자가 본인 입으로 '돈을 건넸다'고 밝히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용기 있는 선택, 정직의 대가는?

곽 교육감은 2억 원을 전달했다는 발표에 앞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법학자이자 교육자입니다. 법으로부터 올바름을 배우고 교육으로부터 정직 배웠습니다. 올바름과 정직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자 안내자입니다. 선거가 혼탁하다고 하지만 강의실에서 가르친 바에 따라 법과 원칙에 충실하게 선거운동 전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올바름과 정직함을 실천하기 위해서 '준비된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곽 교육감의 의도가 진짜라고 하더라도 2억 원을 건넸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전략적인 발언이었다고 해석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스스로 입지를 좁힌 발언이라는 점에서 선뜻 동의가 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에는 선거 담당 재판부의 판결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더더욱 불리합니다. 판사들의 전망이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겠죠.

곽 교육감이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그 분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금액이 크기 때문에 대가성이 인정되면 실형을 면치 못할 수도 있고, 그러면 35억 원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을 가르치던 교육자의 양심 때문에 불리함을 각오하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라면, 저는 곽 교육감의 용기 있는 선택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시간 지나 밝혀질 법원 판결을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일단 곽 교육감 사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부디 법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 사이에 괴리가 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본인에게 최선이든 최악이든 상관없이, 곽 교육감이 다시 한 번 용기있는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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