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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더위에 발목잡힌 태극전사

[취재파일] 무더위에 발목잡힌 태극전사

축구대표팀이 우려했던 무더위에 결국 발목을 잡혔습니다. 쿠웨이트전이 열린 밤 8시 이곳 기온은 섭씨 38도로 그야말로 찌는 듯한 더위였습니다. 앉아서 축구 보는 것도 힘든데 90분 내내 뛰어야 하는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팀은 선제골을 넣었지만 경기내용에서는 쿠웨이트에 밀렸습니다. 쿠웨이트의 오른쪽 날개 알 에네지에 선수의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에 우리 수비진이 농락당했습니다. 알 에네지에 선수는 놀라운 스피드와 개인기로 우리의 왼쪽 측면을 휘저었습니다.

현장에서 함께 경기를 지켜보던 쿠웨이트 기자에게 그 선수플레이가 참 인상적이라고 말했는데, 쿠웨이트 기자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개인기만 좋으면 뭐하나? 동료들에게 패스해야 할 때 안 하고 혼자서 다 하려다가 경기를 망친다. 그리고 골 결정력도 형편없다”며 혹평을 하더군요.

우리 선수들은 무더운 날씨 탓에 기동력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쿠웨이트 선수들의 빠른 역습과 스피드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공수 전환도 늦어 번번이 쿠웨이트의 역습에 위기 상황을 맞았습니다. 정성룡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1, 2골 정도는 더 내줬을 것입니다. 1대1로 비긴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동 원정에서 이기는 것이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습니다.

경기를 마친 직후 조광래 감독을 인터뷰했는데 조 감독도 무더위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을 지휘하느라 땀을 연신 흘렸고, 완전히 진이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중동의 다른 나라보다 쿠웨이트의 더위가 훨씬 심해 선수들이 도저히 정상적으로 뛸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체력과 기동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조광래호가 추구하는 빠르고 세밀한 축구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쿠웨이트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했는데 지난주 금요일 레바논전을 마치고 곧바로 출국해 10시간이 넘는 비행과 6시간의 시차, 그리고 무더위와 낯선 잔디까지 모두 정신력으로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가득 메운 쿠웨이트 관중들은 한국을 꺾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쳐 다소 아쉬워하는 반응이었습니다. 파란색 플래카드를 흔들며 열광적인 응원을 펼친 관중들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쿠웨이트가 동점골을 넣었을 때는 정말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과거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에 대표팀 원정 경기를 취재 갔을 때 썰렁했던 경기장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쿠웨이트 경기장 시설은 A매치를 치르는 경기장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뒤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과거 동대문 운동장 정도의 규모인데 쿠웨이트 현지 클럽인 카즈마의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0년에 지어졌는데 유지보수가 제대로 안 돼 시설이 너무 낡았습니다. 게다가 관중 통제가 제대로 안 돼 대표팀 버스가 경기장에 입장할 때 관중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버스를 가로 막는 바람에 우리 선수들이 밖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힘든 쿠웨이트 원정을 마친 조광래호는 다음달 11일 홈에서 아랍에미리트와 3차전을 치릅니다. 아랍에미리트는 현재 2패로 조 최하위에 처져있는데 우리의 홈 경기이니만큼 화끈한 승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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