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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교육 시장에도 통하는 허영 마케팅

명품 심리 노리는 비밀 고액 과외교습

[취재파일] 사교육 시장에도 통하는 허영 마케팅

여름방학이 끝났습니다. 여름방학은 사교육 기관들이 호황을 누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방학 동안 학교 대신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요.

그런데 학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건 꼭 한국의 수험생 뿐만이 아니더군요. 미국의 수험생인 한국 유학생들이 SAT 공부를 위해 원정 유학을 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여름방학 기간은 대치동, 압구정동, 청담동 일대의 SAT 학원들이 반짝 호황을 누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정부의 학원단속반 활동도 바빠집니다. 학원단속반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는 밤 10시 교습시간 제한을 어긴다거나 신고된 금액 이상의 교습료를 받는다거나 하는 행위를 주로 단속합니다. SAT 학원의 경우에는 학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교습행위를 한다거나 신고 금액과 달리 고액 교습비를 받는다거나 하는 행위들이 주된 단속 대상입니다.

지난 달 학원단속반의 SAT학원 단속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등록을 하지 않은 채 교습행위를 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았는데요,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어학원의 경우 일반 보습학원보다 등록 조건이 까다로운데 이런 시설기준 등을 갖추지 못해 등록을 못하는 업체도 있었고, 고액 교습료를 받으면서 세금을 탈루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록을 하지 않는 업체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은 교습료가 상당히 '고액'이라는 겁니다. 불법인 만큼 광고도 없고 시설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이지만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그 만큼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 때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취재한 불법 교습시설들 중 하나도 그렇게 잘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꽤 많았습니다. 일부 유학생의 경우 집이 서울이 아니어서 방학 동안 한국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고향 집에 가지 못한 채 서울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해 지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등록 교습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수업을 해달라고 청하는 학부모가 많았다고 합니다.

강사진은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SAT를 가르치는 만큼 좋은 SAT 성적을 받았고 따라서 미국 명문 사립대학을 나온 강사들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몰려드는 교습시설 중 하나에는 하버드에서 받은 듯 보이는 증서가 진열된 곳도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 석박사 학위증명서도 아니었고 수료증도 아니었지만, 라틴어로 하버드의 이름이 분명히 써 있는 액자 속 증서에는 학원강사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래 쪽에는 하버드 총장의 이름이 필기체로 쓰여 있었고요. 문서 전체가 라틴어로 쓰여 있어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럴 듯해 보이는 문서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원단속반이 들이닥친 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다시 진열장 앞으로 가 보니 그 문서가 담긴 액자가 통째로 사라진 겁니다.

하버드 출신임을 자랑하듯 학원 진열장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그 액자가 어디로 간 걸까요? '역시나...' 싶어서 조용히 물으니 학원 관계자는 치웠다고 순순히 인정을 합니다. '사실이 아닌 거죠?' 다시 묻자 '아시잖아요'라고 답을 대신합니다.

해당 학원에서 직접 수업을 들어본 게 아니라, 화제의 강사가 실제로 정말 잘 가르치는지, 그래서 일주일에 백만 원 정도 하는 고액 교습료를 받아도 학생들이 몰려드는 건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하버드 출신의 스타강사'로 믿고 있는 강사들이 최소한 그런 경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교습행위였기 때문에 당국의 감시나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운데, 먼 곳에서도 마다 않고 찾아올 정도로 이 학원을 믿고 따르는 수험생들 사이에서, 문제의 강사는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 채 고액 강의료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학원단속반의 한 직원은 '강남 지역 유학생과 학부모들은 고액 수강료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강의료를 고액으로 책정해도 학생들을 모으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마치 일부 명품 브랜드들이 제품의 공급량을 제한하고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할수록 소비자들로부터 더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SAT 학원가에서는 알음알음 소그룹의 학생들을 모은 뒤 고액 수강료를 제시할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더 큰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등록 학원의 강의, 미신고 개인과외는 모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교습행위이고, 이렇게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교습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학원, 그 교습자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좋은 곳, 좋은 강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꼼꼼한 소비'는 사교육 상품을 선택할 때도 예외가 아닙니다. 물론 상품을 구입하기에 앞서 '내가 이 상품을 꼭 사야 하나?', '내게 꼭 필요한 상품인가?'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점도 사교육 시장과 일반 소비 시장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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