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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리비아의 '무한한 가능성'

[취재파일] 리비아의 '무한한 가능성'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저희 회사는 유럽을 통틀어 파리 한 군데 밖에 특파원이 없기 때문에, 주변국에서 중요한 일이 생기면 늘 출장을 가게 됩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그 동안 20차례 가깝게 출장을 다녔습니다. 모든 출장지가 다 기억에 남지만, 특히 리비아의 인상은 아주 강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리비아는 제 담당 국가는 아닙니다. 저희는 카이로 특파원이 따로 있어서, 중동과 아프리카를 담당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리비아와 우리나라의 관계가 워낙 특수하고, 또 세계사적으로도 리비아 혁명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취재 지원 지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덕에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리비아 동부 시민군의 근거지 벵가지와 서부의 수도 트리폴리를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기자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몇 번의 단편적인 인상이 전체 이미지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 비쳐진 리비아의 이미지는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리비아는 우선 자연 자원이 풍부합니다. 리비아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9위일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들의 정유시설 상당수가 리비아산 원유만을 정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리비아산 원유가 아니면 버티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리비아 사태 초기 프랑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공습에 나섰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은 석유도 석유지만 천연가스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리비아의 천연가스는 전세계 매장량의 1% 남짓인데,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많아 잠재력이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해저 가스관을 리비아산 천연가스를 통해 직접 공급받기도 합니다. 50~6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리비아가 1인당 GDP 11,300달러까지 올라선 것은 바로 이 자원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인적 자원도 훌륭합니다. 리비아의 문자 해득률은 82%로 아프리카 국가들과 아랍권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무상 공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다른 아랍권 국가들과 달리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기도 합니다. 어머니, 오빠 둘과 함께 이웃나라 알제리로 도주한 카다피의 딸 아이샤도 의사였을 뿐 아니라, 트리폴리 시내 병원들의 의사 가운데 30%가 여성이기도 합니다. 리비아와 좌우로 인접해있는 튀니지, 이집트와는 사뭇 다른 점입니다.

지정학적인 자원 또한 리비아의 경쟁력입니다. 수도 트리폴리는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남부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17~18세기에는 유명한 해적 기지가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가 각축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리비아의 이런 기본적인 경쟁력을 깎아 먹을 수 있는 요인들 또한 많습니다. 리비아는 140개 부족으로 이뤄진 공동체입니다. 지금도 각 부족장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부족별 이해관계도 다양하고 친소관계도 복잡해 이들을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새로운 리비아 건설에 관건입니다.

국제사회의 이권 다툼 또한 리비아의 미래에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이미 프랑스는 리비아 석유의 35%를 공급받기로 과도 국가위원회(NTC)와 합의했다고 합니다. 영국이나 미국 역시 리비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관심이 클 것이고, 아랍권에서는 이례적으로 반 카다피 전선의 선두에 섰던 카타르 역시 리비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리비아가 이런 난관들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번 내전을 통해 리비아 국민들은 '뭉쳐야 산다'는 법을 배웠습니다.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뒤로 한 채, 하나의 적(카다피)에 대항하면서 리비아 국민들은 하나가 됐습니다. 그 경험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데도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세와 관련해서도 리비아 과도 정부가 중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NTC는 지난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팬암기를 폭파시켜 270명을 숨지게 한 '로커비 테러범' 알-메그라히를 영국에 송환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1984년 런던의 리비아 대사관 앞에서 근무하던 여경 이본 플레처를 총으로 쏴 숨지게 했던 용의자 역시 영국으로 송환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영국이 아무리 큰 도움을 줬다고 하더라도 리비아인을 다른 나라의 사법 시스템에 넘길 수 없다는 국가적 자존심인 것이죠.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개인적으로는 카다피 이후 리비아의 미래가 밝다는데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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