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내전 현장에서 기자들이 사는 법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살아남기

[취재파일] 내전 현장에서 기자들이 사는 법

42년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난 리비아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카다피군이 시르테 쪽으로 퇴각하면서 그 쪽 방향의 정수장에 독약을 풀었을지 모른다며 상수도 공급이 중단된 지가 벌써 열흘 가까이 돼 가고 시내 곳곳엔 먹거리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대다수는 새로운 민주 정부 건설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건 기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민생고를 해결하는 게 기자들에겐 큰 숙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과 식량 부족, 위생문제 등 트리폴리 시민들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기자들에게도 똑같은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세계 유수의 방송 취재진들이 몰려 있는 이 곳의 래디슨 블루 호텔은 5성급 호텔이지만 그제까지만 해도 물 공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취재진들은 취재나갈 때마다 생수 구하기 전쟁을 벌여야 했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면 귀한 물 대신 콜라 같은 음료수를 페트병으로 몇 개씩 부어가며 해결해야 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물을 부을 때보다 이런 탄산음료를 붓는 게 악취 제거엔 좀 더 효과적이더군요.^^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육중한 방탄조끼까지 입고 취재를 하다보면 온 몸은 땀범벅이지만 먹을 물도 없는 와중에 샤워는 꿈도 못꾸는 상황이었습니다. 대신 많은 기자들은 호텔 수영장에 몸을 던져 더위도 식히고 샤워도 대신했는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다국적 땟국물이 끼면서 수영장 물에 플랑크톤이 번식해 급기야 녹조 현상이 시작됐습니다.



5성급 호텔이지만 각종 원료 공급이 중단돼 빵 한 조각도 구할 수 없는 형편... 전 세계 기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먹거리 확보에 나서야 했고, SBS 취재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우선 문을 연 슈퍼마켓을 찾아가 쌀과 냄비, 전기 스토브를 구하고 재래시장에서 계란 한 판과 감자, 고추 같은 야채를 좀 사다가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일정에 쫓기다 보니 이것도 하루 한끼 정도… 삶은 감자와 삶은 계란 등 조리가 편한 메뉴가 주를 이루게 되더군요. - 이거 뭐 북한 정치범 수용소 메뉴같군요…-




더 큰 문제는 잠자리였습니다. 전 세계 언론이 모여들다 보니 방 한 칸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그렇다고 인터넷 사정 때문에 다른 호텔로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우리 취재팀은 하는 수 없이 위성 연결이 용이한 15층 꼭대기의 로비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곳도 내전 와중에 교전이 벌어져 멀쩡한 유리창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죠.




이처럼 전쟁터를 취재하는 건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함께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극한의 순간들을 수시로 감내해 내야 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장비와 인력, 자본에서 절대 열세일 수 밖에 없는 한국 언론의 현실에서 유수의 해외 방송들처럼 전쟁 취재를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다수의 언론들이 그런 의지도 없고요..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현장에선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만큼은 한 번쯤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2001년의 아프간전, 2003년의 이라크전… 21세기 세계사의 방향을 뒤틀었던 굵직한 전쟁을 현장에서 경험했어도, 이번 리비아 내전 취재는 또 다른 새로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