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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트리폴리, 안전해지기는 했지만…

[취재파일] 트리폴리, 안전해지기는 했지만…

리비아 국경을 넘어 트리폴리에 들어온 지 6일이 됐습니다. 첫날인 26일만 하더라도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들리고, 골목마다 삼엄한 경비망이 펼쳐졌었는데, 주말을 지나면서 점차 도시가 안정되고 있습니다. 낮에는 도심 외곽에서 간헐적인 총성만 들릴 뿐 교전이 벌어지는 듯한 모습은 아닙니다. 시민들도 별 두려움 없이 도심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생필품 부족이죠. 수도 공급이 끊어졌고, 전기는 지역별로, 시간별로 제한 송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주요 수송 경로인 튀니지-리비아 북부 국경이 막혀 있어서 제대로 보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생활 물가가 4~5배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이틀 전부터 이 국경을 시민군이 장악하면서 물자 수송이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아직 생필품 가격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트리폴리 시민들은 대부분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카다피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감내할 만한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슬람 특유의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아랍어) 문화 때문일 수도 있겠죠.

30일로 이슬람 권의 라마단(낮 동안 금식하는 이슬람 절기)이 끝났습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 트리폴리 시민들 역시 낮에는 금식을 하는데, 해가 진 뒤 식사를 하고 나서는 모두 길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심각한 건 이 때 각 지역의 자경단뿐 아니라 시민군들도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댄다는 것입니다. 대략 10시쯤에 어디선가 칼라시니코프 자동 소총을 쏘아대기 시작하면, 이에 호응하듯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납니다. 대공 자동화기까지 등장하면, 마치 시내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총격음이 새벽 3시까지 멈출 줄을 모르는데, 벌써 5박 6일째 이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전혀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총기 오발사고도 가끔 일어난다고 합니다. 또 유탄의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저희 취재팀이 묶고 있는 호텔에서도 며칠 전, 스페인 위성송출 회사인 Overon의 직원 한 명이 다리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위성 송출 회사의 특성상 호텔 별관 옥상 위의 개방된 장소에 장비를 설치한 채 일을 하고 있다가 총탄을 맞은 것입니다.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저격수의 조준사격이라기 보다는 시민군이 허공에 쏘아댄 자동소총의 유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마구 내버리듯 쓰이고 있는 무기들이 내전이 끝난 뒤 제대로 수거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트리폴리의 경우 시민군이 접근해오자, 당시 카다피 정부가 시민들에게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공급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완전 무장 수준의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전투에서나 이후 매일 밤 이유 없이 쏘아대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탄이 소비됐지만, 아직도 실탄 비축량은 엄청납니다. 이들은 베두인족 유목민의 후예답게 무장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카다피는 5공화국 당시의 우리나라처럼 학생들에게 교련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성인들이면 기본적인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것입니다. 카다피 스스로는 자신의 이념에 따라 국가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신념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군사교육을 시키고 무기를 공급한 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하여튼 시민군과 지역 자경단의 무기 남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과도 국가위원회도 기본적인 통제를 시작했습니다. 시민군에 대해서는 지급하는 실탄의 양과 소모된 양을 확인하고 있고, 일반인들에게는 무기 사용 자제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과도 국가위원회의 이런 시도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여서 불안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전이 끝나고 공통의 적이 사라진 뒤에는 지금의 무기가 흉기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저희 취재팀은 도심의 한 주유소에서 지역 자경단이 자동소총을 흔들어대며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아마도 유류 공급 순서와 관련해서 갈등이 생긴 모양인데, 불안해서 황급히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후에 주변에서 총소리를 듣지는 못했기 때문에 불의의 사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리비아의 일반 시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기는 언제든지 불의의 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시한폭탄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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