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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초록사과에 멍든 농심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이용식 기자 yslee@sbs.co.kr

작성 2011.08.30 13: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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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결실의 계절, 가을이 문지방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태평가가 울려야 할 들녘에선 농민들의 한숨소리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농산물은 여러 변수들이 많아서 어느 상품들보다 수요와 공급의 예측과 조절이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늘 요동치는 가격에 들녘의 태평가 소리가 사라진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별나게 변덕스런 기후로 농민들의 속이 더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긴 한숨에 등골이 휘는 농민들은 하릴없이 ‘농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짓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변화 무쌍한 기후변화를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란 얘기죠. 우량종자 개발과 과학영농이 아무리 발달해도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월~3월까지의 추위는 참 대단했습니다. 최저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영하10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열흘 이상 지속되기도 하면서 언제 ‘삼한사온’의 기온패턴이 있었는지조차 잊게 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봄바람에 혹한의 추위가 떠밀려 갔지만 과수나무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는 예년보다 열흘 가량 꽃이 늦게 피었고, 씨방이 얼어서 수정을 하기도 전에 새까맣게 말라 죽는것도 부지기수 였습니다. 추위에 약한 복숭아와 포도나무의 경우 밑둥이 얼어 아예 새 잎을 틔우지도 못한 채 말라 죽었습니다. 올해 과수농사는 시작부터 이렇게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지난주 충남 예산과 천안의 사과, 배 농장을 찾아갔습니다. 지난해보다 열흘 가량 이른 추석이어서 추석 제수용 과일의 작황이 궁금해서였습니다. 변덕스런 날씨 탓에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과수원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붉은 빛을 띠는 사과는 거의 눈에 안 띄고 시퍼런 초록사과 뿐이었습니다.

9월초에서 중순에 수확하는 조생종 사과는 보통 추석 때 차례용이나 선물용으로 출하하는 것인데 붉은 색깔을 내지 못 하고 있으니 농민들 속이 오죽 하겠습니까?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농민들은 사과가 햇볕을 잘 받게 하려고 주변에 있는 잎새를 부지런히 따냈습니다.

또 사과나무 바닥엔 햇볕 반사용 은박지를 깔아 필사적으로 과일 익히기에 나섰습니다. 설익다보니 사과의 맛을 좌우하는 당도 또한 표준치를 밑돌아 사과 특유의 달콤한 맛이 덜한 상태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기는 배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육 촉진을 위해 이중 봉지를 씌우고 영양제까지 주고 있지만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어른주먹 두 개 크기만 한 배들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출하 기준인 600g에 미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습한 날씨 탓에 배 표면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병까지 돌아 품질마저 떨어졌습니다.

농민들은 예년에 비해 수확량이 30~40%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작황 부진의 원인은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봄철 냉해와 동해를 입은 데다 6월 이후 두 달 가량 이어진 지루한 비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4일 기준으로 이달 들어 일조시간을 비교해보면 천안의 경우 64.9시간으로 지난해 108.5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부여와 충주도 각각 62시간, 71.6시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3.4시간, 98.1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사과와 배가 덜 크고 설익을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흔히 농사는 사람이 절반, 하늘이 절반 짓는다고 하지만 사실 하늘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란 의제가 지구촌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생존환경을 덜 파괴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연구와 노력이 진행 중이기도 하지요. 따지고 보면 위기의 근원은 사람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방종이 화를 부른 것입니다. 초록사과를 보면서 더 늦기 전에 자연 앞에 겸손해하고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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