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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시 리비아에 가다 - 트리폴리 진입

[취재파일] 다시 리비아에 가다 - 트리폴리 진입

리비아 시민 혁명이 시작돼서 처음 리비아 국경을 넘은 지 6개월 만에, 다시 리비아에 들어왔습니다. 6개월 전에는 동쪽의 이집트 국경을 통해서였고, 이번에는 서쪽의 튀니지 국경을 통해서였습니다. 입국 경로와 6개월이라는 시차만 달랐지 방법은 비슷했습니다.

리비아는 원래 비자가 있어야 입국이 가능한 나라여서 정부군이 관리하고 있는 국경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리비아의 동쪽 절반은 일찌감치 반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외신기자들의 경우 이집트 국경을 통해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쪽에서는 트리폴리까지의 접근이 어렵습니다. 워낙 멀기도 멀 뿐만 아니라, 중간에 시민군 지역과 정부군 지역이 교차되기 때문에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리비아의 서쪽 절반은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그 동안은 취재진의 접근이 불가능했는데, 반군의 세력이 강해지고, 호칭도 시민군으로 바뀌면서 서쪽의 상당부분을 장악한 뒤 트리폴리까지 함락시키자 외신기자들이 모두 튀니지와 접한 서쪽 국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리비아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제르바라는 튀니지의 대표적인 휴양지 부근에 있습니다. 이 제르바 공항이 트리폴리로 가기 위한 외신기자들의 출발점입니다. 제르바에서 1시간 반 거리가 바로 국경인데, 문제는 이 국경의 리비아쪽 관문은 아직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르바에서 제일 가까운 국경이 봉쇄돼있는 상황인 것이죠.

따라서 리비아 입국을 위해서는 남쪽으로 4시간 가량 사막을 가로질러서 디히바라는 국경도시로 가야 했습니다. 이곳은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 도시 엘 살룸처럼 시민군이 장악한 지역이어서 리비아 입국에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외신기자들에 대해서는 특히 우호적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통해 입국을 하면 또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날루트라는 도시로 이동해야 비로소 리비아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날루트에는 외신기자들을 위해 미디어 센터도 설치돼 있고, 미디어 센터를 통해 트리폴리나 알 자위야 같은 교전지역으로 이동하는 교통편을 알선해주기도 합니다.

저희 취재팀이 오후 3시 제르바를 출발해 디히바를 거쳐 날루트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날루트는 리비아 서남부의 산악 지역 도시인데도, 미디어센터는 에어컨까지 설치돼 비교적 쾌적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돼도 30도 전후를 오르내리는 사막의 열기를 잠시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죠.

그렇지만 문제는 트리폴리까지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8시 뉴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밤길을 달려가려고 했는데, 모두들 너무 위험해서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며 제지하고 나섰습니다. 당연히 교통편을 찾을 수 없었고요.

그래서 다음 날 새벽 일찍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현지 시각 10시 이전에는 트리폴리에 도착해야 한국 8시 뉴스에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시민군 측 운전기사와 협의를 하자, 미디어센터 관계자는 게스트 하우스로 가서 잠시 눈을 붙이고 가라고 안내하더군요. 이곳이 저희 같은 외신기자들의 중간 쉼터였던 것입니다.

이 미디어 센터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기자들을 만나 서로 정보도 교류하고 또 트리폴리까지 동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공유된 이야기는 트리폴리가 일부 지역을 빼고 비교적 안정화되기는 했지만, 서쪽 외곽도시인 알 자위야에서 트리폴리까지 가는 30~40킬로미터의 길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정부군의 잔당들이 남아서 무차별 총격을 자주 하기 때문에 ‘잘 피해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모든 것을 운전기사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었죠.

아직 컴컴한 새벽 5시, 산악 지역이어서인지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운전석 옆에는 칼라시니코프 자동 소총을 내려놓은 운전기사와 함께 트리폴리로 출발했습니다.

산길을 한참 내려와서 달리는 중간 중간, 도로 한가운데에 모래 둔덕들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작은 모래 둔덕을 좌우로 교차해 여러 개 쌓아놓으면 차량들이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바리게이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또 2~3 킬로미터 마다 검문소가 있어서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 어느 취재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줘야 했습니다. 트리폴리에 가까워 올수록 검문소 간격이 좁아지고 검문 과정도 철저해지더군요. 날루트에서 트리폴리까지 350여 킬로미터 거리를 가는 동안 거친 검문소는 거짓말 안 보태고 60군데가 넘습니다.

200~300미터 간격이어서 서로 보이는 거리에 있는 검문소들마다 똑같은 내용을 묻는 것이 처음에는 지겨웠지만, 트리폴리 주변에 와서는 오히려 검문소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더군요. 검문소가 있다는 것은 시민군 장악 지역이고, 교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오전 9시 반, 4시간 반을 걸려 트리폴리의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제르바에서 자동차로 3시간 반 정도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차량이동 시간으로만 9시간,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18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것입니다. 그만큼 트리폴리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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