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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

[취재파일]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

올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하루가 멀게 내리는 집중호우에 산이 무너지고, 강물이 넘쳤습니다. 차가 물에 잠기고, 소중한 생명과 재산도 많이 잃었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말 못하는 동물들, 특히 주로 실외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고충도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동물원을 찾아 더운 여름 날씨에 힘들어하는 야생동물을 취재했었습니다. 제가 취재를 갔을 때도 동물원 동물병원에선 진료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습한 날씨에 앵무새 한 마리가 저체온증으로 숨져 수의사들이 부검을 하고 있었고, 이집트 사막이 고향인 레오파트거북이는 습한 여름 탓에 식욕을 잃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잦은 비 탓에 마른 땅 대신 질퍽한 땅을 뛰어다닌 사슴과 말 등은 발굽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또, 사료로 쓰는 건초가 비에 젖어 곰팡이가 자주 피면서 동물들의 배탈도 예년보다 20%나 늘었습니다.

동물원에서도 동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들은 비를 맞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오두막을 지어주고, 사육장 곳곳을 불로 소독해 습기를 줄였습니다. 건초도 습기에 젖지 않게 선풍기와 환풍기를 거의 24시간 가동하고, 회진도 평소보다 더 자주하는 등 각종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무더위와 잦은 비라는 이중고로 어느 해보다 힘든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극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가는 동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어려운 자연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군계일학은 역시 낙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생존하기 힘든 사막에서 낙타는 수 천 년 동안 말 그대로 악전고투하며 생존해 왔습니다. 그럼 점에서 낙타의 생존 전략이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낙타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사람과 함께 생활해 왔습니다. 사막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간신히 적응한 사람에게 낙타는 수 천 년 동안 생존을 위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짐을 운반해준 것은 물론 유일한 교통수단이 돼 주었습니다. 인간이 먹고 살 수 있게 젖을 주었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변까지 땔감으로 내주었습니다. 죽어서는 가죽과 살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낙타가 사막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낙타 화석이 처음 발견된 곳은 북미지역입니다. 적어도 300만 년 전까지 낙타는 지금의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낙타가 약180만 년 전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알래스카를 거쳐, 아시아로 이동했습니다. 또, 일부는 더 나아가 아프리카까지 건너갔습니다.

그럼 왜 낙타는 북미지역을 떠나 척박하기 그지없는 사막까지 왔을까요? 우리 인생사보다 더 구구절절할 사연을 모두 다 알기는 어렵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은 있습니다. 우선, 빙하기에는 북미와 남미, 아시아 등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 동물들의 대륙 간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미지역의 힘센 육식 동물들이 북미지역으로 들어왔고, 북미지역에선 몸집이 큰 포유동물들이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선수가 영입돼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 다른 팀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쩔 수 없습니다. 낙타도 이런 경쟁구도에서 밀려서 북미지역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낙타가 북미지역을 떠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럼 왜 하필 사막이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낙타는 경쟁이 없는 곳을 찾아 사막으로 간 것입니다. 지구상에 사막보다 더 살기 힘든 곳은 없습니다. 물과 먹이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낮에는 엄청 뜨겁게 달궈졌다가도 밤이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집니다. 모래 폭풍도 수시로 몰아칩니다. 한마디로 동물이 살기에는 최악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동물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곳, 그래서 경쟁할 필요가 없는 곳이 사막입니다. 물론 아프리카의 경우도 사바나 지역은 먹이가 풍부해 동물들이 풍요롭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낙타는 경쟁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독야청청’하겠다는 마음으로 사막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낙타가 척박한 사막에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낙타는 기본적으로 다른 생물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을 진화시킨 동물이 아닙니다. 경쟁을 피하는 대신 어려운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내성을 키우면서 외모를 바꾸고, 생리적으로 적응한 동물입니다. 낙타의 생존 전략은 한마디로 환경에 대한 내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막은 극한 환경만 견뎌내면 굳이 급하게, 쫓기며 살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도 없고, 개체수가 적으니 먹이 경쟁도 없습니다.

낙타는 위기에서 정공법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야구 투수로 치자면 화려한 변화구를 던지는 기교파 투수가 아니라 묵직한 직구로 승부하는 정통파 투수였습니다. 사막의 열악한 환경을 정면으로 돌파한 것입니다. 사막에서 제일 힘든 건 역시 뜨거운 태양입니다. 다른 동물들이 땅 속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는 것과 달리 낙타는 오히려 얼굴을 햇볕을 향해 마주보게 돌립니다. 햇볕을 피하려고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가 뜨거워져 화끈거리지만 햇볕을 마주보면 얼굴은 뜨겁지만 몸통 부위에는 그늘이 져 그만큼 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에는 공기 중에 수증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막에서는 땡볕과 그늘의 온도 차가 매우 큽니다. 그래서 그늘이 생기면 외부보다 낮은 온도의 공기가 낙타의 몸통 주변을 순환할 수 있습니다. 낙타는 그렇게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왔습니다. 교활한 술책이 성공의 비법인양 판치는 우리 사회에 비춰보면 고지식해 보이지만 용기 있는 낙타의 정공법이 더 빛나 보입니다. 

낙타의 몸은 사막에 적합한 구조로 발달해왔습니다. 우선 다리가 길어졌습니다. 한여름 기온이 60~70도까지 오르는 사막에선 몸이 지면과 떨어져 있어야 유리한데, 낙타는 긴 다리로 이런 어려운 점을 극복해 왔습니다. 실제로 낙타의 몸통 온도는 긴 다리 덕에 발바닥이 있는 모래바닥보다 온도가 무려 10도 낮습니다. 거기다 두꺼운 털은 햇빛을 반사하고,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하는 단열재 역할을 해 강한 햇볕과 무더위를 견뎌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낙타의 머리는 햇빛가리개 모자처럼 생겼습니다. 눈부신 햇빛이 직접 눈에 닿지 않도록 넓적한 뼈가 눈 주위를 덮어 햇빛가리래 역할을 합니다. 이는 마치 뜨거운 햇볕과 거센 모래 바람이 부는 지역에서 이슬람 여성이 차도르를 쓰고, 남성이 머리에 터번을 두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얇은 눈꺼풀은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줍니다. 눈물샘에서 나오는 눈물은 눈이 마르지 않게 적셔 주고, 모래를 씻어내기도 합니다. 이 눈물은 다시 코와 연결된 관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갑니다. 또, 코 밑에 있는 구멍은 숨을 쉴 때 나가는 수분을 다시 빨아 들여 수분 낭비를 막습니다. 소변을 보기는 하지만 그것도 자기 다리에 눠, 수분이 열을 흡수해 체온을 떨어트리는 방법을 이용합니다.

더위에 적응하는 데는 체온뿐만 아니라 행동도 중요합니다. 목마름과 더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도망치듯 다짜고짜 달렸다면 낙타는 사막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낙타는 달릴 수는 있지만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걷습니다. 외부의 열도 주체하기 힘든 판에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면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막을 횡단하면서 빨리 걷거나 달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사막에서 뜨거운 햇볕 못지않게 낙타를 괴롭히는 것은 강한 모래바람입니다. 이 성가신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서 낙타는 잘 발달된 코 근육을 이용해 코를 벌름거리고, 모래가 들어오기 전에 콧구멍을 닫습니다. 또, 낙타의 귓속은 털로 덮여 있어 모래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낙타가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법 가운데 뛰어난 수분관리 능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 가시덤불이나 씨앗, 동물의 뼈나 가죽까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고, 이 안에 함유된 수분을 혹 속의 지방이나 몸 구석구석에 저장해 둡니다. 낙타는 몸에 물을 저장하는 기능이 탁월해 하루에 최대 200리터도 마실 수 있습니다. 갈증이 심할 때는 10분 안에 100리터가 넘는 물도 마실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동물들이 이렇게 마시면 신장 기능이 마비돼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 보름까지도 물을 마시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또, 몸 속의 수분이 40퍼센트 이상 줄어도 버틸 수 있게 진화해 왔습니다.

심지어 낙타의 적혈구도 수분을 저장할 수 있게 진화했습니다. 낙타의 적혈구는 달걀 모양으로 길쭉하게 생겨 물을 많이 흡수할 수 있습니다. 또, 매우 견고해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신 뒤에 생기는 높은 삼투압에도 파열되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거기다 낙타는 오줌도 농축해 누고, 변도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수분을 흡수해 배설합니다. 

역시 낙타의 가장 큰 특징은 등에 있는 혹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낙타의 혹 안에는 물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데, 낙타의 혹은 지방으로 돼 있습니다. 영양분을 혹에 지방으로 저장해뒀다가 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시켜 부산물로 물을 만들어 냅니다. 일종의 비상식량 창고인 셈입니다. 호주 사막에 사는 캥거루나 주머니두더지도 지방대사로 생기는 물을 이용합니다. 먹을 것이며 마실 것이 거의 없는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에서 살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낙타는 오랫동안 먹지 못하면 혹 속의 지방이 줄어 혹이 쭈그러들고 말랑말랑해지고, 움푹 들어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다시 충분한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면 단단하게 다시 올라옵니다.

끝으로 장시간 사막을 걸을 수 있게 다리도 잘 발달했습니다. 낙타는 다리가 길고 야위었지만 뼈가 단단하고 근육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허벅지 근육이 매우 튼튼합니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거리를 다닐 수 있습니다. 무릎에는 진한 회갈색의 가죽으로 된 패드가 있어 무릎을 꿇고 쉴 때 쿠션 구실을 해 무리 없이 체중을 견딥니다. 또 무릎 관절이 강해서 등에 짐을 짊어진 채로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극한 역경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면 삶의 자세가 진중해집니다.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늘 조신해집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여유롭습니다. 낙타를 보면 모진 풍파를 맞으며 산전수전 다 겪고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올여름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여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다가오는 가을을 우리도 낙타처럼 조금 더 여유 있고 진중하게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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