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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의 휴가…불편한 세계 지도자들

[취재파일] 대통령의 휴가…불편한 세계 지도자들

여름 휴가들 다녀오셨는지요? 이제 여름도 다 갔으니까 대부분 다녀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한창 휴가 중입니다. 매사츄세츠주에 있는 마사스 빈야드(Martha's Vineyard)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에도 간 곳인데 아마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곳은 미국 동부에 있는 섬 가운데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으로는 가장 크다고 합니다. 1969년 케네디가의 막내 정치인인 고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이 섬에 있는 다이크 브릿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곳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 교통사고는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결국 대권의 꿈을 접게 만들기도 했죠.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갈 곳 없는 흑인 중산층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도 합니다. 가장 돈 많이 버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같은 유명한 흑인들도 휴가 때마다 이 곳을 찾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내심 이 곳을 흑인들의 성지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약간은 인종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더군요.

하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휴가 때마다 즐겨 찾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그런 시각에서 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마사스 빈야드의 평소 인구가 1만 5천 명인데, 여름에는 7만 5천 명으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것만 봐도 전형적인 여름 휴양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점도 있고 골프장도 있고 해서 책읽기 좋아하고 골프를 좋아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두 딸을 데리고 서점을 찾고, 틈만 나면 보좌관, 친구들과 라운딩을 하면서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온전히 쉬는 휴가는 분명 아닌 듯 합니다.

단지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에 이은 증시 추락같은 미국과 세계의 경제위기나 카다피의 몰락이 임박한 리비아 사태같은 외부적 요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가기 이전부터 반대당인 공화당 측에서 집요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미트 롬니 전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당장 돌아와 지금이라도 의회와 함께 미국이 당면한 과제들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존 헌츠먼 전 주중 미국대사 역시 트위터를 통해서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보통 미국인들은 일자리 잡기조차 어려운 상황인데, 오바마는 휴가지에서 즐기고 있다는 식의 선전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보통 미국인들은 오바마의 휴가에 대해서 관대합니다. 마사스 빈야드 주민들은 오바마가 오기 전부터 환영한다는 플랭카드를 내걸고 "어서 빨리 대통령이 왔으면 한다"고 설레는 심정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워싱턴 DC에서 미국인들과 인터뷰를 해봤는데, 무슨 문제냐는 식의 반응들을 보이더군요. "대통령도 보통 사람들처럼 여름 휴가는 즐길 권리가 있다.", "아니 의원들도 다 휴가를 갔는데 오바마 혼자 이 곳에 남아 있는다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휴가 가서 잘 쉬다가 돌아와서 더 잘하면 그 게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공화당의 공격이 언론에 자꾸 보도되면서 백악관도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대응에 나선 게 아니라 대변인이 그 역할을 대신 했습니다.

카니 대변인은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휴가를 간다. 항상 연락 가능한 것은 물론 국가 안보팀과 경제팀으로부터는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만약에 워싱턴으로 급히 돌아와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지체없이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휴가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라고 항의했습니다.

휴가에 관대한 미국의 문화에서 공화당의 주장이 조금은 지나치다는 인식이 미국에서는 더 많아 보입니다. 다만 워낙 지금 미국내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까 공화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예전보다는 는 게 사실이고요.

더우기 어제(24일)는 114년만에 가장 강력한 진도 5.8의 지진이 워싱턴 DC를 비롯한 미 동부지역을 강타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생기고 말았죠. CNN은 "대통령이 휴가 중인 마사스 빈야드에서도 진동이 감지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골프를 치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이 오른손에는 골프 장갑을 낀 채 왼손으로 휴대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모습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공화당 소속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정치고문이었던 론 커프먼은 "모든 대통령이 휴가때마다 오바마 대통령처럼 일이 많은데 무슨 휴가냐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은 휴가 때도 완벽하게 쉬지는 못한다"면서 오바마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전 기사를 찾아보니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미국 대통령들은 좀 더 편하게 휴가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전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치르면서도 임기의 4분의 1을 휴가로 보냈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낚시를 즐겼다고 하고요. 아이젠하워는 골프 치는 모습을, 빌 클린턴은 부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서 또 다른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답니다.

사실 이번 여름에는 오바마뿐 아니라 영국의 캐머런,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완벽하게 휴가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미국뿐 아니라 유럽 증권 시장까지 흔들렸던 게 이유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에 세 사람 다 휴가지에 있었습니다.

바캉스라는 말의 원산지가 프랑스인 것은 다 아시겠습니다만, 그만큼 유럽인들에게 여름 휴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기간도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길어서 보통 3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간다고 하네요. 그래서 국가지도자의 여름휴가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더 관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엄중하게 돌아가고, 특히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그 관대한 유럽인들조차 "이런 상황에서도 휴가지에 있는 것은 문제 아니냐?"는 식의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조금 더 일찍 휴가를 갔던 메르켈 독일 총리는 어쨌든 휴가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왔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휴가에서 복귀했고, 그럼에도 이탈리아에서 계속 휴가를 즐기겠다던 캐머런 영국 총리도 런던 폭동으로 어쩔 수 없이 휴가 일정을 단축하고 런던으로 복귀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지구상에서 여유있고 먹고 살 만 해서 일반 국민이나 정치지도자 모두 마음껏 휴가를 즐기던 선진국(혹은 서방진영)의 휴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닌 경제인 것 같습니다. 즉, 먹고 살 만할 때는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러다가 진짜 큰 일 나는 게 아닌가 싶어지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국가 지도자가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선진국의 지도자들이 여름 휴가조차 마음껏 즐기지 못하게 된 현실은 풍요를 구가하던 그들의 좋은 시절도 이제 다 갔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올 법 합니다.

그런 면에서 1년에 휴가를 여름에만 한 일주일 정도, 그마저도 대부분 다 쓰지 못하고 사나흘 정도 다녀오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아직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할 때라는 국민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대통령의 휴가에서 이렇게 나라마다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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