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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 그림 어떻게 밀수입되나 했더니...

[취재파일] 북한 그림 어떻게 밀수입되나 했더니...

북한 그림 본 적 있으신지요. 금강산 소나무와 비룡폭포, 댕기머리에 한복을 입은 여인과 '인민'이란 단어가 적힌 버스까지...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소재와 생소한 풍경으로 북한의 예술품이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북한 그림이 대량으로 밀반입되는 현장을 경찰이 적발했습니다. 북한 예술품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만 있으면 들여올 수 있지만, 이런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국내에 몰래 들어온 그림이 지난 1년간 무려 1천 3백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예술품 밀수입 과정이 드러났습니다.

북한 그림을 국내에 밀수입한 브로커는 중국 동포 김모 씨, 김 씨의 남편은 중국 연길에 있는 북한 교포단체인 '조선 해외동포 원호위원회' 회원입니다.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 단체가 단순한 교포들의 친목 단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북한 평양에 있는 '만수대 창작사 조선화 창작단'이란 예술단체와 계약을 맺고 북한 그림을 사들였습니다. 연간 8천 달러와 판매 수익의 절반을 주는 조건으로 그림을 받았습니다.

'창작단'은 북한 평양에 있는 화가들의 모임입니다. 아무래도 평양에 있으니 실력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북한 예술가들은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다가 농한기에 주로 예술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아마추어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인민 예술가', '공훈 예술가', '1급 화가' 등 실력 차이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는 등 프로의 모습도 갖추고 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이 가운데 인민 예술가가 가장 높은 등급입니다^^)

이 단체에는 60여 명의 화가들이 속해 있는데 이 가운데 인민 예술가는 한두 명, 공훈 예술가는 10여 명, 1급 화가는 40여 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림의 가격도 이 등급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창작단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 앞에서 직접 찍은 웃지못할 사진(?)도 그림과 함께 보내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이렇게 위원회에 넘어 온 북한 그림을 지난해부터 국내에 몰래 들여왔습니다. 주로 국제 우편을 이용하거나 직접 가지고 들어왔는데, 한지에 그린 그림인지라 부피가 크지 않아 둘둘말아 소포로 보내면 한 번에 5백 장까지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관에서도 소포 내용물이 한지인 건 알았겠지만 '북한 그림'일 거라고 상상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김 씨는 부천의 한 주택에서 우편으로 그림을 받은 뒤 인천과 대전, 광주의 갤러리에 북한 그림을 팔았습니다. 한 장에 3만 원에서 많게는 1백만 원까지 가격도 다양했습니다.

사실 북한 그림이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한지에 그린 데다가 같은 소재를 그린 그림이 수십 장도 더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랍시고 이름난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사들였던 갤러리를 찾아가 봤더니, 북한 그림에 대한 수요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갤러리 대표에 따르면 북한 그림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다고 합니다. 주로 실향민이나 수집가들이 북한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찾았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소장하는 게 큰 부담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실제 김 씨가 1년간 보낸 그림 1천 3백여 점 가운데 1천 1백여 점이 이미 팔린 걸 보면 국내에서 그림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는 셈입니다. 브로커 김 씨는 이런 사람들을 노리고 그림을 팔았습니다. 북한 화가들도 이런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려주고 외화를 벌여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북한 그림은 생각보다 간단한 경로로 국내에 밀반입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강화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때문에 남북간 예술품의 교류가 예전처럼 쉽지 않아졌고,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절차를 몰랐던 갤러리들은 자신도 모른 채 범법행위를 해온 겁니다.

하지만 국가의 승인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북한의 그림들은 앞서 설명한대로 산수화나 풍경화가 대부분인지라 국내에 들어온다고 해서 국가 보안에 큰 구멍이 뚫릴 정도로 위협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직된 남북관계가 예술품을 밀반입하는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닌지... 물론 불법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순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림은 그림일 뿐, 저 역시도 생전 처음 본 북한 그림들을 더 편한 마음으로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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