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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온라인 게임했는데 국보법 위반?

[취재파일] 온라인 게임했는데 국보법 위반?

34살 회사원 박모 씨는 얼마 전 경찰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피내사자 신분으로 나오라는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북한 체체를 찬양했다는 이유였다.

다른 혐의도 아닌 그 무시무시하다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경찰의 말에 박 씨는 황당함을 넘어 무서움을 느꼈다고 했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집회 전력은 더더욱 없으며 북한과 가까운 강원도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고개를 숙이는 인사보다 거수경례가 익숙한 그로서는 더욱 그랬다.

그는 경찰이 출석요구서만 보내고 전화 한 통 없길래 '답답한' 자신이 경찰에 전화를 직접 걸었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박 씨가 온라인 게임 상에서 만든 '길드'(인터넷 게임상의 마니아 집단으로 '클랜'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했다는 것이 혐의 내용이라고 했다. 또 북한 국기인 인공기를 길드 마크로 사용한 부분도 혐의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억울해했다. 지난 2008년부터 이런 이름으로 게임을 시작했고 당시 길드를 만들면서 게시판에도 '정치적인 목적은 전혀 없고 주목을 받아 길드원들을 더 모으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분명히 밝혔다고도 했다. 기자를 만나서도 자신이 100%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취지도 밝혔고 당시 가입했던 몇몇 길드 구성원들도 이제 다들 게임을 하지 않아 자신만 혼자 가끔씩 퇴근 후 즐기고 있는데 무슨 국가보안법 위반이냐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미 박 씨는 피내사자로서 '부득이한 사정' 없이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받은 상태였다.

경찰 조사는 지난 주 후반에 있었다. 경찰은 박 씨에게 8개월 동안 내사를 해 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박 씨는 그 동안 회사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와 자신의 근무태도, 상황 등을 묻곤 했다고 하던데 그 전화를 경찰이 했냐고 되묻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경찰은 박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탈북자와의 관계, 접촉 유무 등을 캐물었다고 한다.

이게 201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일정 나이만 되면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하며 팀 이름을 북한으로 지었다고 해서 북한을 찬양한다는 혐의를 적용한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범죄 혐의는 없겠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욱일승천기 마크를 썼다면 일본을 찬양하고, 성조기를 마크로 했다면 미국을 찬양하는 이들로 어떠한 고려도 없이 분류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존치와 폐지 문제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식을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박 씨는 자신을 조사하던 경찰도 특별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조사를 해야 하니까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조사하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 정도의 사안을 굳이 공권력이 동원돼 국가보안법 운운하며 공연히 사람을 불러 조서까지 꾸며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2일 대법원은 집안에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 사진을 걸어놓은 49살 정모 씨에 대해 죄가 없다고 확정했다. 즉,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 사진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재판부는 “인공기는 반국가 단체인 북한을 상징하지만 그 자체로는 다른 나라와 북한을 구별하는 상징물일 뿐"이라며 "김일성 부자가 북한의 최고 권력자이긴 하지만 해당 사진이 통치 모습을 담은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경찰서에서 두어 시간 조사를 받은 박 씨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게임에 사용하던 인공기는 조사 뒤에 바로 한반도기로 바꿨다고 했다. 물론 강제로 한 행동은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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