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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예인도 속은 증권전문가의 명품 연기

[취재파일] 연예인도 속은 증권전문가의 명품 연기
낚시꾼과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남자와의 공통점은? '뻥'이다. 수백만 낚시동호인과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마친 대한민국의 아들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낚시 얘기와 군대 얘기에는 적절한 허풍이 늘 섞인다.

오히려 적당한 과장과 그럴싸한 상황 설정이 없으면 재미가 없을 정도다. 삽 하나만 있으면 탄약고를 지었다 부수었다 할 정도로 군 생활 내내 삽질을 했다는 복학생의 허풍. 상어만한 도미를 24시간 사투 끝에 잡았다는 낚시꾼의 영웅담. 모두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뻥'이다.

적당한 수준의 과장이라면 오히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은 자리의 분위기를 한껏 띄울 수 있는 경험담이다. 사실 수백만 관중이 열광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도 재미난 '뻥'이니까!

문제는 이런 '뻥'으로 요리조리 먹고살 궁리를 하면서부터 생긴다. 투자 전문가로 유명세를 탔던 민 모씨처럼 말이다.

방송사에서 어깨너머로 일 좀 배웠다고 베테랑 PD를 사칭했다. 이런 가짜 이력을 이용해 이번에는 케이블 TV에 증권전문가로 출연했다. 화려한 언변과 호감형의 외모를 앞세워 자선행사에 적당한 기부도 하고,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팬'관리도 했다.

인맥이 넓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투자를 권유하거나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아 신뢰를 쌓았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여러 사람을 소개받았고, 이렇게 소개받은 사람들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해 수십억을 끌어모았다.

투자자들은 그에게 돈을 맡기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증시가 온통 시퍼런 색으로 물들고, 수조원의 싯가 총액이 증발해도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탤런트, 개그맨, 유명 교수 등 이름만 대면 '아하~~!'하며 얼굴을 떠올릴 만한 사람들이 뭉칫돈을 들고 그를 찾았다. 적게는 5천만 원에서 많게는 4억 원씩 맡겼다가 결국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민씨는 경찰조사에서 처음부터 돈을 가로챌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돈을 잘 굴려서 막대한 이익을 남겨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투자에 실패해 사기를 쳤다는 거다. 요동치는 증권시장에서 충분히 정상 참작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문제는 민씨가 처음부터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모두 민씨의 경력을 다르게 알고 있었다. 출신학교도 제 각각이었고, 경력도 모두 달랐다.

거짓말이 다시 거짓말을 낳다보니, 어떤게 현실인지 민씨도 헷갈릴 정도였다. 이건 뭐 장자도 아니고,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경지였다. 의학용어로 '망상장애'라고 부른다. 민씨에게 남은 건 오직 방송에 출연하는 스타 전문가라는 '이름발'뿐이었다.

결국 슬금슬금 투자자들을 피해 도망만 다니다가 철창 신세를 지고 있다. 억대 돈을 날린 투자자들이 모두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으니, 연예인도 깜빡 속아 넘어가는 명품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거다. 역시 허풍은 적당히 쳐야한다.

아, 참! 민씨에게 피해를 봤다고 고소한 사람 가운데 5천만 원 정도 손해를 본 한 개그우먼의 이름이 빠져있었다. 경찰 얘기로는 고소인 명단에 이름을 올려 언론에 알려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손해보는 게 났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한다.

5천만 원이 그 연예인에게는 큰 돈이었는지, 아니면 그야말로 '껌'값이었는지 사기를 당해 마음 상해있는 사람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참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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