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어떤 시점에 기사를 쓰는 것이 옳을까요? 논란이 되는 기사를 쓸 때마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누군가 수사를 받고 있다거나, 잘못을 저지른 의혹이 있어 소송에 휘말렸다는 기사를 쓸 때 더욱 조심하게 됩니다.
며칠 전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 공판이 있었습니다. 강 전 청장은 흔히 '함바'라고 부르는 건설현장 식당 브로커 유상봉 씨로부터 거액을 받고 인사 청탁 등을 들어준 혐의 등으로 구속된 채 재판에 회부됐습니다.
징역 6년, 벌금 1억 7천만 원, 추징금 1억 7천만 원. 1심이기는 하지만 유죄 선고를 받은 전직 경찰총수 가운데 -우리 역사에는 불행히도 이런 분들이 강희락 전 청장 말고 여러 명 더 있습니다 - 가운데 최고형량 아닌가 싶습니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강 전 청장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기사를 저는 남들보다 먼저 썼습니다. 기사를 쓰기 전 충분한 취재 과정을 거쳤고, 기사에 자신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강 전 청장이 무죄가 된다면, 내 기사가 결과적으로 무고한 사람의 인생에 큰 피해를 준 것이 아닐까?'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병진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보며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주병진 씨는 지난 2001년 한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됩니다. 당시 경찰 조사 단계에서 한 기자가 단독 보도를 합니다. 주병진 씨가 구속까지 됐고, 1심에서 유죄판결까지 받았으니 그 경찰 조사 단계에서 작성된 그 기사의 '진실성'도 입증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2심에서 '진실'이 뒤집힙니다. 관련된 증언과 증거가 조작됐다는 증인이 등장했고, 이른바 피해여성의 행적에도 의심스런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결국 주병진 씨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여성은 '무고죄'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주병진 씨는 이후 재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최초 언론보도와 이후 수사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무릎팍 도사>에서 털어놨습니다.
주병진 씨가 성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단독 보도도 강희락 전 청장의 수뢰혐의 보도만큼이나 확실한 기사였을 것입니다. 보도 대상이 구속되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까지 똑같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주병진 씨는 죄를 짓지 않은 것으로 판정받았고, 기사를 쓴 기자는 결과적으로 주병진 씨에게 큰 피해를 준 셈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기자가 기사가 되는 '피의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부 정치적 오용 가능성 때문에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부산 저축은행의 비리'나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같은 대중의 공분을 자아내는 사안에 대한 '피의사실 보도'가 잘못됐다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기사가 되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확신의 함정'일 것입니다. 기사가 '확실한 취재'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취재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기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진실에 접근해가는 수사기관이나 사법부도 '실체적 진실'보다는 증거법 상에 인정되는 증거들이 드러내는 최대한의 진실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드러나는 증거가 가리키는 의혹을 성실히 보도하면서, 당사자의 반론을 충실히 포함하는 보도. 공자님 말씀 같긴 하지만 내가 쓴 기사가 누군가에게 흉기가 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이 이상의 답을 저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항상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사회부 기자로서 자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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